아주 보통의 딸.

할아버지에게 안부를 묻는 밤.

by 경주ist

보통의 딸이라면 엄마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특별히 아빠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성인이 되어가며 아빠와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아빠와의 일화를 늘어놓으면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하는 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아빠는 다소 무관심하고 무뚝뚝하며 아빠와 단둘이 외출해 본 적이 없다며 나를 신기해했다. 요즘에도 아빠와 함께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거닐면 주변 사람들이 의아한 시선으로 본다. 이목구비부터 시작해 풍채까지 닮은 부녀의 다정함이 특별해 보여서겠지. 그리고 이젠 그들의 시선이 싫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아빠는 반평생 카센터를 운영하셨다. 7살 무렵, 아빠의 퇴근소리에 맞춰 현관으로 쫓아 나갔다고 한다. 퇴근한 아빠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나였다. 어느 날은 치킨이. 어느 날은 아이스크림이 들려있을 그의 손을 기다렸던 거라 전해 들었지만. 내가 기다린 건 아빠였을 거라 확신한다. 엄마는 2살 터울의 두 동생들을 돌보느라 의사소통이 가능한 나는 뒷전이었을 거고 억울함을 들어줄 아빠를 자주 기다렸을 거다. 반가움도 잠시, 아빠는 퇴근 후에 늘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아빠의 팬티를 챙겨 문 앞에 앉아 아빠를 기다렸단다. 기다림의 보상은 크고 따뜻한 손길이었다. 누구보다 나를 먼저 힘껏 안아주셨던 기억과 느낌이 생생하다.


우리 집 비누는 늘 얼룩덜룩했다. 범인은 아빠다. 손에 잔뜩 묻은 자동차의 기름때를 씻어내느라 비누가 깨끗한 날이 없었다. 우리 집 화장실의 비누는 '아빠비누'라고 불리는 아빠물건이었다. 그 비누로 손을 씻으면 손이 더러워질 것만 같아 다른 가족들은 자연스레 비누를 사용하지 않았다. 아빠의 작업복과 함께 세탁한 옷들에서도 은은한 기름향이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난의 향이겠지만 그땐 몰랐다. 자동차의 기름때는 싫었지만 아빠의 손은 싫지 않았다. 굳은살이 박여 딱딱하고 손톱 사이사이는 거무튀튀한 아빠의 손을 기억한다.


엄마가 부재할 때면, 아빠는 내가 끓여낸 라면을 먹으며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할아버지는 농부였고 아빠는 고등학생 때부터 섬을 벗어나 목포에서 소위 유학생활을 했단다. 친구들의 부모님과 달리 농부인 할아버지가 부끄러웠다고 했다. 어쩌다 목포항로 나온 아버지와 함께 길을 걸을 때면 누가 볼까 싶어 서너 발 먼저 걸어갔다고 한다. 먼저 걸어가 버리면, 느린 걸음으로 할아버지가 따라왔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섬을 벗어나 다른 일을 하셨다면 어땠을까 싶으시다면서, 한평생 우직하게 농사만을 짓던 할아버지의 이야기였다. 할아버지는 농부였구나. 처음엔 별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초등학생 무렵부터 잊을만하면 한 번씩 하셨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은데 특별한 추억이 없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거라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다. 용돈만으로 생활이 가능했지만 잉여시간이 많았고, 사회경험을 빨리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돈이 더 필요했다. 부모님께 더 받아도 되지만 사용처를 일일이 밝히는 것이 싫어서 시작한 일이다. 전단지 돌리기부터 횟집, 빵집, 맥도널드, 편의점 등등 시간당 4500원을 위한 일을 꾸준히 했다. 그렇게 돈을 모아 원하는 물건을 샀을 때, 기쁨보다는 고단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일하며 다양한 일들을 겪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최저시급에 그치는 일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살림이 나아지는 법이 없었다. 돈벌이가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달으며 보다 일찍 철이 들었으리라. 부모님은 나를 키우기 위해 이보다 더 힘든 순간이 많았겠구나. 힘이 부칠 때면 아빠의 삶의 무게를 가늠해 보면 별일이 아닌 듯이 넘겨낼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사회생활에 적응했다.


어느 날, 아빠는 또 그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금 고단한 하루였는지, 후회와 원망이 섞인 목소리로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늘 듣는 것에만 그쳤지만 이번엔 이와 같이 답했다. "아빠, 내 친구들은 아빠가 정확하게 무슨 일 하는지도 몰라. 아빠 같은 아빠가 어딨어. 그리고 난 한 번도 아빠가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어. 카센터에서 일하는 게 뭐 어때? 삼 남매 이만큼 키워낸 것이 대단하지. 학자금 대출 없이도 학교를 졸업할 수 있잖아. 일해보니까 돈 버는 게 정말 쉽지 않아. 힘들 때면 아빠를 떠올리곤 해. 그러면 별일 아니더라고." 아무 말 없이 들으시더니 "다 커버렸네" 한마디를 하시고는 식사를 마치셨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할아버지 이야기는 반복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 이유는. 농부인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던 것처럼 카센터에서 일하는 아빠의 모습을 딸이 부끄러워할까 걱정하신 게 아닐까 싶다.


기술의 발전으로 자동차는 좀처럼 고장 나지 않는다. 또한 제조사마다 수리센터가 생겨나며 개인 카센터의 입지가 좁아졌다. 아빠의 카센터는 한해 한해 버텨오다 코로나 직전 문을 닫았다. 아빠의 퇴직을 다 함께 축하했다. 삼 남매는 경주, 서울, 경기도로 흩어졌고 화장실의 비누는 본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삼십 년 만에 '아빠비누'에서 보통의 비누가 되었다. 오늘날의 부녀는 역할을 바꿨다. 부산집에 방문한 어느 주말이면, 딸은 곧장 화장실에 들어가 깨끗한 비누로 손을 씻는다. 화장실에 놓인 깨끗한 비누를 만지면 옛 생각이 스친다. 손에 비누칠을 하며 출근하기 싫어하던 나태함, 삶의 무력함을 씻겨 내린다. 비눗물을 헹구며 금세 더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화장실 문을 나온 딸은 가장 먼저 아빠를 찾는다. 그러고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아빠를 힘껏 안는다. "아빠, 잘 지냈어?"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막내아들의 큰 딸 진리입니다. 잘 계신가요. 처음으로 안부를 여쭙습니다. 살아계셨다면 절 많이 예뻐하셨거라 들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해 아쉬운 마음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성실함과 다정함을 닮은 사람입니다. 또한 효심이 깊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큰 사람입니다. 할아버지의 인품을 가장 많이 닮은 막내아들이죠. 저 또한 아빠를 많이 닮았습니다. 할아버지의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이 되고, 그 결과 지금의 제가 저로써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아버지는 농부인 할아버지가 부끄러운 순간이 있었다고 했지만, 저는 할아버지가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 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목포항에서 아들을 따라 느리게 걷는 길이 외로우셨다면, 이 짤막한 편지가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막내아들은 이제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없겠지만 자주 웃음 짓게 하고 힘들 때면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겠습니다. 힘껏 안아주고 치킨과 맛난 음식들을 잔뜩 사주겠습니다. 작은 행복을 끊임없이 느낄 수 있도록 함께 하겠습니다. 할아버지,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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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