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좋은 열두 가지 이유.
"야, 나 친구 별로 없는 거 알지? 너는 꼭 와야 돼"
청첩장을 건네며 반협박(?)을 일삼는 요즘. 결혼을 몇 달 앞두니 두 손에 꼽는 친구의 수가 걱정이다. 어릴 때부터 쾌활한 편이었지만, 여학생에게 흔한 '단짝' 하나 없었다. 덮어두고 친구의 편을 들어주는 성격이 아니었고, 볼일 없는 화장실을 함께 가는 것도 싫어했다. 나를 단짝으로 생각했던 친구들은 금세 실망하고 다른 짝을 찾아 떠났다. 나는 그룹 속에서 두루 잘 지내면서도 종종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이십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한 성격 탓에 여전히 주변 사람들은 내가 외향적인 사람이라 생각한다. 실은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집에서만 충전되는 사회화된 내향인 입니다만.
"이거 완전 사기 결혼이야. 정말 이 정도의 집순이였어? 제발 외출 좀 하자니까."
예비남편 K의 푸념. 우리는 결혼식을 앞두고 6개월째 같이 살고 있다. 한 달에 하루 쉬었던 그가 올해부터 일요일마다 쉬게 되면서.. 전쟁 같은 일요일을 함께 보내고 있다. 밖에서 에너지를 얻는 그와 집에서 에너지를 얻는 나는 매주 링 위에 올라 싸워야 했다. 외출로 일그러진 나는 매번 그를 일그러트렸고. 집에서 심통 난 그는 나를 혼자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우리는 자주 싸웠다. 그를 사랑하지만 그와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커져갔다. 싸운 이후 잠깐의 정적이나 그와 분리되는 것마저 내심 좋아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누군가 내게 혼자인 게 얼마나 좋냐-라고 물어온다면, 자가 진단도 내릴 수 있다. 혼자이길 좋아한다면 같이 테스트해 보기를!
하나, 오롯이 혼자일 때 더 에너지를 얻는다. 혼자서 외로움을 느끼기보다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 든다. 가장 편한 표정으로 널브러질 수 있어야 하고. 누구의 시선과 방해도 없는 환경에서 편하게 쉬면 충전이 된다.
둘, 빈 의자와 마주 앉아 브런치를 먹어도 행복하다. 짭조름한 햄과 신선한 야채가 곁들여진 한 접시를 나눠먹지 않아도 된다. 행복에 집중할 수 있다. 브런치의 맛, 나의 모습, 주변의 소리, 오늘의 분위기 등등. 함께면 지나쳤을 사소한 무엇에서 행복을 느낀다.
셋, 혼자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좋다. 화장을 끝내고 들여다본 거울. 또는 샤워를 끝내고 수증기가 적당히 덮여 뿌연 거울 앞에서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거울 속에 나는 항상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기분 좋은 눈 맞춤에 웃음이 난다.
넷, 혼자서 방귀를 시원하게 뀐다. 장은 예민하고 민감한 기관이다. 소화뿐 아니라 면역체계와 정신건강에도 깊이 연결되어 있어 '제2의 뇌'라고 불린다. 방귀는 장이 잘 기능하고 있다는 신호. 혼자 있는 틈을 타서 엉덩이에 힘을 주고 시원하게 뀐다. 가끔은 K와 함께일 때, 그를 떨어뜨리기 위한 용도로 뀌기도 한다.
다섯, 혼자 하는 외출이 더 좋다.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계획이 없다면 더 좋다. 누군가에게 취향도 시간도 행선지도 맞출 필요 없다. 이유 없는 계획 변경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허용되는 외출. 혼자 하고 싶은 대로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집으로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여섯, 글을 쓴다. 연속성을 필요로 하는 글쓰기는 대화보다 복잡한 생각을 하게 한다. 자신이 처해진 상황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게 되기도.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거나 사고를 전환을 위해서는 혼자여야 한다. 시간을 빠르게 흐르게 하는 글쓰기가 좋다. 일상 속에서 글쓰기를 생각하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일곱, 사랑보다 짝사랑이 더 편하다. 짝사랑은 내가 멈추면 곧장 멈춰진다. 사랑의 깊이와 기간과 정도를 타인과 협의 없이 정할 수 있다. 자신의 감정 변화에 집중해야 하며, 시작과 끝을 혼자 몰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음!!! 난 이 사랑을 해 봤어요.* 십 년 전에 일방적인 사랑을 했었고!! 그때 같이 알고 지냈던 사람들을 전부 다 끊었습니다.
여덟, 혼잣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자신의 생각을 소리 내어 표현하는 혼잣말은 외부로부터 응답을 기대하지 않고 행한다. 나는 요즘 화가 식지 않을 때 한탄 섞인 비속어를 혼잣말한다. 내가 하는 말은 나부터 듣는다는 것을 떠올려 보지만, 참는 것이 쉽지 않다. 반면에 스스로를 격려하는 다정한 혼잣말은 자기 위로와 감정 조절에 도움이 된다.
아홉, 공허함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함께이지 않을 때 우리는 공허함을 느끼기 쉽다. 주말 아침, 아빠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돈을 좇던 삶에서 벗어나니 이제야 헛헛하다고. 혼자 걸을 때면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한다고. 공허함의 신호다. 공허함을 마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때 우리는 삶의 의미나 목표를 재설정하려 한다. 공허함을 마주할 때 내면의 성장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열, 유튜브 아이디를 공유하지 않는다. 기술과 삶에 대한 경계가 무너진 시대를 대변하듯, 알고리즘은 개인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나만의 취미,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라면 유튜브 아이디를 공유하지 않는다. 공유할 수 있다면 누군가와 연결된 삶을 살고 있을 확률이 높다.
열하나, 혼자임에도 더 혼자이고 싶어 한다. 스스로 허락한 소음 안에서 누군가의 방해 없는 혼자인 하루가 나에게는 꼭 필요하다. 미뤄둔 집안일을 하고 복잡한 머리가 비워지길 바라며 계획 없던 낮잠을 청해 본다. 하루가 어렵다면 다만 몇 시간이라도 혼자이려고 노력한다. 커튼을 닫고 혼자일 수 있는 시간까지 알람을 맞춘다. 할 일을 최대한 미뤄두고 혼자인 시간을 보내다 보면 다시 함께하는 시간을 보낼 용기가 채워진다.
열둘,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예를 들면 다시 혼자가 되는 그날을 상상해 본다. 남편 없이, 내게 의지하는 아이들 없이, 내가 속한 공동체 없이 정말 혼자라면? 나는 경주 바닷가의 인심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밑줄 그어진 책 몇 권과 그간 모아 온 엽서 몇 장을 진열해 두고. 체력이 허락하는 만큼 바다에 뛰어들고. 오가는 젊은 이에게 해물라면을 끓여주고.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혼자가 된 그날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선명하게 그려지는 행복한 이야기가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혼자가 좋은 사람' 자가 진단 테스트 결과]
4개 미만- 혼자는 싫어!! 공동체와 함께하고 싶은 사람.
9개 미만- 혼자여도 괜찮아요. 건강한 독립심을 가진 사람.
12개 미만- 혼자가 좋아요. 사회적 연결도 중요한 만큼, 균형 잡힌 삶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한 사람
12개- 혼자이고 싶어요. 혼자이고만 싶은 건 아니죠? 변화가 필요해요.
나의 결과는 12개! 이토록 혼자이고 싶은 나는 곧 결혼한다.
위기다. 나의 첫 번째 위기. 결혼하면 혼자인 시간이 부족해질게 뻔하다. 그나마 지금은 나와 그의 퇴근 사이 하루 3시간씩 혼자인 시간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긴다면..? 지난 주말, 11개월 된 아이를 둔 부부와의 만남이 있었다. 부부의 삶은 온전히 아이의 것이었다. 그들의 일상을 몇 시간이나마 체험해 보니 진이 다 빠져버렸다. 잠깐도 아이에게 눈을 뗄 수 없었고, 엄마는 밥도 편히 먹지 못했다. 덩달아 나까지 밥을 남기게 되었다. 임신과 동시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몇 년간 한시도 혼자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나는 혼자일 수 없는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오징어 게임 시즌 2, 2024, 넷플릭스, 기훈의 대사 中 "난 이게임을 해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