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두지 않기로 한 날들

무해 ː 無害

by 강혁

삶이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사람은 관계라는 그물 속에 조용히 매달려 살아간다.
말 한 줄, 표정 한 번, 순간의 몸짓이 보이지 않는 실처럼 서로를 잇고,
그 실을 따라 감정의 전류가 찰나마다 일렁인다.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누구의 마음은 따뜻한지, 어디엔 미세한 균열이 있는지
빛의 결을 읽듯 더듬어가며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의 말과 마음을 읽어내려는 노력 속에서 하루를 버틴다.
말 한 줄에 담긴 온도를 가늠하고, 표정의 작은 떨림에서 의도를 찾고,
침묵의 틈에서조차 무언가를 해석하려 애쓴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의도를 탐색하는 마음이 먼저 금이 가고, 그 금을 메우려 던진 질문들은
언제나 더 큰 오해의 파문을 만들었다.

말은 그대로였는데, 그 위에 칠한 색들이 말보다 먼저 나를 아프게 했다.
말의 의미가 아니라 내가 부여한 의미가 마음을 가장 빠르게 침식시켰다.

그런 것들이 뺏어가는 에너지가 컸다.

지쳤다.

모든 것을 밝히려 애쓰는 동안 정작 사라진 것은 타인의 마음이 아니라 내 안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나는 해석의 숲에서 조금씩 걸어 나오기로 했다.
말의 안쪽을 파헤치기보다 겉을 스쳐가는 빛의 방향만 보기로 했다.

그 빛이 따뜻하면 따뜻한 대로, 차갑다면 차가운 대로 있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말의 결을 읽으려던 오래된 습관을 조용히 풀어놓기 시작하자,
그동안 말 위에 덧입혀 두었던 그림자들이 서서히 벗겨졌다.

의미를 밝히려는 손을 내려놓자 말들은 비로소 물결처럼 고요히 흘렀다.
나는 그 흐름의 가장자리에 앉아 내 마음의 색을 다시 고르고 있었다.


타인의 말을 파도처럼 받아들이고 조용히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어떤 말은 부서져도 괜찮고, 어떤 말은 잔잔히 스며와도 괜찮은 그런 사람이.


의미를 해석하는 것도,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결국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때로는 그저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로 인해 손해를 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순진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스스로에게 들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손해처럼 보이는 순간들조차 이따금씩 나를 지키기 위한 작은 완충재가 된다.

때로는 억지 해석보다,

때로는 과잉 추론보다,

그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흘려보내는 선택이 오히려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선택은 명확한 답을 주고, 또 어떤 선택은 나를 조용히 흔들어놓기도 하지만,
그 둘 사이에는 누구도 재단할 수 없는 필요한 흐름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은 내 안의 작은 무늬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해석으로 생긴 금들을 색으로 덧칠하지 않고 빛으로 말려내는 일이라는 것을.


오늘도 나는

타인의 의도를 붙잡지 않고, 의미라는 그림자를 더듬지 않고,

나를 다치게 하지 않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말 한 줄에도 흔들리던 마음이 비로소 제 색을 찾으려 한다.

나는 그 색을 무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