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15분 알람이 울면 후다닥 일어나 방에서 거실로 달려가 알람을 끄고 기지개를 켜고 거실 창을 열어 어둑어둑한 상태에서 날씨부터 확인한다. 비가 오느냐 안 오느냐는 매우 중요한 시그널이다. 걸어서 수영장을 가는 시간은 10분 정도. 반면에 자전거를 타고 가면 힘도 덜 들고 선선한 새벽 바람이 잠도 깨워준다. 물론 걸리는 시간도 단축된다. 덤으로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밟기 때문에 준비운동도 미리 된다.
올해는 유독 예년에 비해 비가 많이 내렸다. 비가 내리는 날은 자전거를 탈 수 없기 때문에 곤욕이다. 게다가 직장인이기 때문에 수영장을 가는 복장은 출근복장이다. 정장바지에 와이셔츠, 그리고 때로는 정장자켓까지... ...비가 오면 수영장까지 걸어가야 하고 가는 길에 비에 젖기도 하고, 젖은 옷을 크지 않은 수영장 락커 사물함에 보관했다가 다시 입고 출근을 해야 한다. 수영으로 시작하는 상쾌한 하루가 '젖은 생쥐'가 된다.
'앗...오늘 비가 많이 내리네. 수영을 가지 말까?'
라고 고민하다가도 커다란 우산에 젖어도 금방 마르는 티셔츠를 입고, 다부진 각오로 최대한 다리와 신발이 젖지 않도록 살금살금 걸어 수영장에 간다. 무사히 락커에 도착해서 젖지 않게 가방에 조심조심 개어놓은 와이셔츠를 락커 옷걸이에 잘 펴서 걸고, 정장 바지도 구김가지 않고 잘 마르도록 잘 펴서 보관한다.
'어차피 물 속에 들어갈 거, 왜 이리 물에 젖지 않으려 이러는 걸까?'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리고 물 속에서 한 시간여 운동하는 동안은 이런 생각이 다행히 들지 않는다. 비에 젖을까 조심했던 생각도, 비가 와서 오지 말까 하는 그런 생각도... ...
그러다 수영 강습이 끝나고 다시 물 밖으로 나오면 퍼뜩 현실로 돌아온다. 샤워를 하고 탈의실로 나오면 반바지에 면티, 슬리퍼를 신고 나가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부럽다. 나도 저런 여유를 누리고 싶다.
주섬주섬 나는 양말을 신고, 조금 마른 정장바지에 아까 걸어둔 와이셔츠를 입은 직장인이 된다. 다시 커다란 우산에 숨어 비를 피해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면 이제부터는 직장인의 아침이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
'아, 이렇게까지 하면서 수영을 해야 하나? 아파트 커뮤니티센터에서 헬스나 골프를 하면 젖지도 않고 더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데 말이야.' '아놔, 요새 아파트에는 수영장도 있다던데 그런 곳으로 가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뒤늦게 안경도 갈아낀다. 운동용에서 '직장인용' 지적인 안경으로. 그리고 플랫폼 유리창 속의 나와 대면한다. 작년보다 날씬해져서 정장 입은 모습이 배불뚝 아재의 모습은 아닌 나. 안경도 초 지적인 안경을 껴서 수리적인 분석도 잘 할 것 같은 나. 머리는 조금 젖었으나 왁스를 바르고 깔끔하게 넘어가 있는 나. 수영복과 타올까지 들어 있어서 남들 꺼보다 훨씬 큰 베낭을 맨 나.
불평불만보다 감사할 일을 생각하자며 스스로를 달랜다. '회사를 잘 다니고 있어서 경제적인 인간으로 생활하고 있고, 집 근처에 수영장이 있어서 운동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아침에 이렇게 운동을 하고 출근하니 넘치는 활력과 에너지로 생산성을 높이자.' 라는 생각들로 말이다.
회사에서 임원이 되면 연간 수백만원에 달하는 호텔 피트니스 회원권을 끊어준다고 한다. 운동하고 일하고 긍정적으로 지내며 임원이 되어 배낭에 수영복을 넣는 평범한 직장인이 아니라, 검은 세단을 타고 호텔 피트니스 수영장에 가서 하루를 느긋하게 시작하는 아쿠아맨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