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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양이 Nov 11. 2023

사랑의 기원에 관하여  


 1958년 미국 조지아대 교수 해리 할로는 잔인하지만 중요한 실험을 계획했다. 붉은털원숭이 새끼를 어미에게서 격리시킨 뒤, 철사 어미와 천 어미 중 누구에게 매달리는지 실험을 한 것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새끼가 어미에게 매달리는 이유를 모유라는 보상 때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행동주의 학파의 영향이었다. 그들은 보상과 처벌이 동기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사랑과 연민 같은 감정은 주요하지 않았다. 주류 심리학의 관점대로라면 새끼는 우유를 주는 철사 어미에게 달라붙어 있어야 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붉은털원숭이 새끼는 우유를 먹을 때를 제외하곤 하루 종일 보들보들한 천으로 된 인형에 매달려 있었다. 어미에 대한 애정이 보상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이론과 상반되는 결과였다. 실험 결과를 믿을 수 없었던 해리 할로는 조건을 다양하게 바꿨다. 아기 원숭이에게 찬물을 끼얹고 송곳으로 찔렀다. 새끼는 두려워하면서도 계속 천 어미에게 안기기 위해 기어 왔다. 


 

해리 할로는 히말라야원숭이를 대상으로도 실험했다. 어릴 적 어머니의 품에 안기지 못한 새끼는 신체적으론 건강했지만 정서적으로 큰 문제가 있었다. 하루 종일 허공만 바라보거나, 몇 시간 동안 몸을 반복해서 흔들었다. 새로운 환경에 마주하면 두려움부터 드러냈다. 다른 원숭이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과도한 공격성을 드러냈다. 반면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란 새끼는 어머니가 주변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면 멀리까지 나아갔다. 세상에 대해 탐구하고,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거침이 없었다. 할로는 사랑이란 먹이에 대한 보상이 아닌, 어머니와의 부드러운 접촉과 유대에서 생기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제는 부모와의 애착이 연인이나 친구 등 모든 관계의 시작이 된다는 증거가 쌓여가고 있다. 


  생체 실험에 관한 증거도 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대통령이 되자 강대국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그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국민들에게 아이를 낳도록 강제했다. 그 결과, 부양 능력이 없는 많은 부모들이 대책 없이 아이를 낳았다. 수많은 아기들이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갓난쟁이를 제대로 돌볼 여력이 없었던 간호사들은 간신히 분유를 먹이거나 옷을 갈아입힐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고아들이 따듯한 접촉과 사랑의 말을 듣지도 못한 채, 감옥과 같은 환경에서 성장했다. 아무런 자극도 받지 못했고, 1인 침대에서 하루 종일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당연히, 아이들의 뇌와 신체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감정 반응과 언어 발달이 뎌뎠고, 지적 장애와 불안 증세에 시달렸다.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은 평범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사랑받지 못했기에, 사랑하는 능력도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어쩌면 몰랐으면 좋았을, 한 독재자의 끔찍한 망상 덕분에 알게 된 사랑의 본질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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