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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양이 Oct 27. 2024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넌 잃을 게 없다고 말하지만, 너의 여자친구와 늙은 집사가 있지 않나. 
넌 이 세계를 몰라. 이해할 수 없는 건 두려운 법이지.”


 우리의 세계는 명확한 한계를 가진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서로 다른 지식과 경험, 다양한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며, 그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간다. 


이를 인지거리라 한다. 


 인지거리란 내가 유의미하게 경험하는 인식의 거리이자, 내가 실제로 삶에서 신경 쓰는 세상의 전부다. 우리 뇌는 고성능 필터를 가지고 있어서 중요한 것과 무시해도 좋은 것으로 세상을 분류하는데, 덕분에 내 세계의 한계가 정해지게 된다. 


 이때 "어디까지가 내가 사는 세상인가?"라는 질문은 곧 "어디까지 신경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치환된다. 지구 반대편에서 강한 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집을 잃었다는 뉴스를 보면 안타까움을 느끼겠지만, 그 슬픔이 오래가지 않는 것과 같다. 그보다는 손톱 옆에 갈라진 살이 더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복지나 인권, 성소수자, 사형제도, 최저임금,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겐 중요한 일이 다른 누군가에겐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있다. 우리의 현실적인 인식 범위는 자신이 경험하는 세상의 한계를 벗어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때 만약 인지하는 세상이 더 넓다면?  고려하는 범주가 멀리까지 늘어난다. 


즉, 진보주의자가 된다.



반대로 세상의 크기가 좁으면?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범위가 늘어난다. 


즉, 보수주의자가 된다. 


 따라서 정치란, 선천적으로 다른 뇌를 가지고 태어나는 보수와 진보가 환경적 요소를 바꾸기 위한 투쟁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인지거리는 후천적으로도 좁아지거나 넓어질 수 있지만,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는 어느 정도까지 타고난 ‘무의식적인 인지거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실 자기만의 인지거리에 걸맞은 삶을 살면서, 그에 어울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인지거리라는 개념을 이해하면 보수와 진보가 왜 다른 세계관과 신념을 가지고 특정 이데올로기에 끌리는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인식체계는 완전히 달라지고, 세상을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렇듯 프레임에 따라 정보를 재해석해 받아들이는 걸 '동기화된 추론'이라고 하는데, 보수와 진보의 논의가 평행선을 달리는 원인이 된다. 


인지거리에 따라 정치 성향이 달라진다




 인지거리가 긴 진보주의자는? 사회 전체, 특히 약자를 더 배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자신과 자신의 집단만 신경 쓰는 보수가 이상하게 보인다. 


반대로 인지거리가 짧은 보수는 나와 내 주변까지만 신경 쓰는 것이 당연한데, 그 너머에 있는 인권이나 평등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기 이익을 양보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그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진보가 정의를 부르짖으며 사회 운동을 하는 모습이 권력을 차지하려는 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동기화된 추론을 거쳐, 강남 좌파 같은 말을 만들어 낸다. 사실 본인들이 그런 식으로 밖에 생각하지 못하니(인지적 당연함 때문에), 남들도 그럴 거라고 예상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인지거리가 극단적으로 짧은 어떤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측은지심에 기반한 진보의 정치행위를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로 진보주의자들은 현실적인 욕망에 충실한 보수주의자를 이기주의자라고 욕하는 오류를 범한다. 


인지거리가 달라지면 보는 세상도 달라진다

 


 보수주의자는 대개 인지거리 영역 밖의 요인들이 미치는 구조적 영향력이나 관계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걸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근본적 귀인 오류'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 ‘개인의 책임’이다. 하지만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인식의 초점이 자기 자신에 맞춰져 있으니, 잘 되면 내가 잘해서 그런 거고, 안 되면 남 탓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내기 때문이다.


 인지거리가 짧으면, 그 범위 내의 대상들에 대해 더 공감하고, 더 애정을 가지게 된다. 이를 바꿔 생각해 보면, 인지거리 내의 대상에 더 집착하거나 맹신한다는 뜻이 된다. 사람이 투입할 수 있는 감정과 인지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범위가 좁아지면 인지거리 내 대상에 대한 공감과 인식의 강도는 상대적으로 더 세진다. 보수주의자들이 남의 자식에는 냉정해도 자기 자식에는 죽고 못 살거나, 경쟁 국가에는 적대적인 동시에 애국심이 넘치는 것도 좁은 인지거리 때문이다. 보수주의자의 이타심이 '우리 대 그들'의 지역주의적 성격을 띠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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