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을 할까?-롤플레이를 하는 이유

Hey! It`s for roleplay!

by 고용석



로블록스 직업에는 보바 카페만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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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블록스에 존재하는 수많은 카페, 레스토랑들. 여러 곳을 돌아다녀봤지만 보바 카페가 가장 많은 가입자와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곳은 건물만 있고 휑한 곳도 많습니다)


그렇지 않다. 굉장히 많은 직업과 장소가 있다.

이를 통칭 롤플레이(roleplay), 역할극이라 부른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역할극 하면 왠지 어린 시절 소꿉놀이라 생각한다. 보바 카페를 시작하면서 다양한 카페들을 검색했다. 놀랍게도 카페뿐만 레스토랑, 치과 등 다양한 장소들이 나왔다.


그중에서 초밥집을 찾아가 봤다.

2ae60a7fac2d77.png?w=780&h=30000 온통 통유리 디자인의 건물이다.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힘든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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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랏샤이 마세!!)

그곳에는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점원들이 있었다.


일식집 콘셉트입니다.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면 무려(!) 종업원이 음식을 가져다준다. 물론 그 종업원도 인간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을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현실에서는 최저시급을 받아가면서도 하기 힘든 일을 온라인 세계에서 사람들은 무보수로 일하고 있었다.


얼마 전 지인들을 만나러 롤링 파스타라는 식당에 갔었다. 여기서는 아예 종업원을 대신해 로봇이 서빙하고 있었다. 거기다 무인 키오스크까지 도입하면 기존에 5~6명이 서빙해야 할 걸 1~2명만 있어도 될 정도였다. 그 정도로 현실세계에서는 사람들이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세계에서는 한 식당에만 10명이 넘는 종업원이 보수도 받지 않은 채 누구는 카운터를 보고 있고 누구는 서빙을 하고 누구는 주방에서 요리를 한다.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주문을 하려 하는 찰나 종업원이 갑자기 다른 곳으로 뛰어간다.

2aeb8807465f11.jpg?w=780&h=30000 (식탁 위에 올라가고 의미 없는 단어들을 내뱉는 행위.. 참 현실이나 온라인이나 이상한 사람들은 꼭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따라가 보았다. 저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여러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듯했다. 자세히 보니 웬 이상한 플레이어 하나가 다른 사람들이 식사하는 테이블에 가서 점프를 하고 시야를 방해하는 등의 어그로 짓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대응 과정이 흥미로웠다. 보통 그 정도의 어그 로짓을 하면 디시털 세상인 만큼 바로 차단하면 될 텐데 종업원들이 굳이(?) 가서 어그로를 끄는 플레이어에게


“손님, 죄송하지만 이곳에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손님 그만둬 주십시오.”
“(손님보고) 저 사람이 어떻게 했나요? 이런 경험을 해드리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실제 고급 레스토랑에서 볼만한 정중하고도 매뉴얼적인 손님 응대를 볼 수 있었다. 지난번 보바 카페에서 메뉴가 잘못 나왔을 때 봤던 정중한 응대가 생각났다. 이렇게까지 현실 세계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역할을 하는 이유가 뭘까 계속 의문이 생겼다. 내가 모르는 보상 시스템이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여기서 소비하는 돈이 어쩌면 내 실제 돈, 로벅스로 몰래 빠져나가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결국 카운터로 가서 여기서 경험하는 모든 서비스가 공짜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공짜라고 한다. 답답해서 “도대체 사람들이 왜 보상도 없이 여기서 이런 일을 하느냐, 왜 공짜로 음식을 제공하느냐?”라고 물어보자,


그러자 그 종업원의 말 한마디가 너무나 강렬하게 제 마음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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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초밥집은 오직 역할극을 위해 존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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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워 친구 진정하라고) 오직 역할극을 하려고 우린 온 거야”


역할극.

롤플레이.


이 단어를 보고 나서 순간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근원을 느꼈다. 그건 우리는 항상 무언가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어렸을 적 우리의 첫 역할극은 무엇이었을까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은 수시로 ‘변신’한다는 걸 알았다. 여자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통해 엄마 역할을, 남자아이는 아빠 역할을 한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 역할과 요리를 하며 남편을 맞이하는 시늉을 하는 여자아이를 보면 보는 사람도 재미있지만 가장 즐거운 사람은 역할을 하는 아이들이다.


또 만화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으로 변신한다. 도구들도 아이들의 상상력을 입혀 변신한다. 종이접시가 방패가 되기도 하고 나뭇가지가 칼이 되기도 한다 여자아이들은 엘사 옷을 입고 얼음공주가 된다.


이게 비단 아이들만의 행동일까.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어른은 재미와 더불어 생존을 위해 역할극을 한다.

하기 싫어도 하고 싶은 척해야 한다.

사회에 나가서 취업할 때도 자소설(?)을 작성한다.

그 일에 최적의 인재인 척해야 한다.

상사 앞에서도 웃는 척을 해야 하고 싫은 고객 앞에서도 웃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퇴근하는 순간 또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다.

때로는 워낙 많은 변신을 하다 보면 어느 게 진짜 자기 자신인지도 잊을 때가 있다. 그래서 서점에 있는 수많은 자기 계발 서적의 주요 내용은 ‘진짜 자기 자신을 찾아라’이다.


아이들이 수많은 게임을 하는 이유도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로 변신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하는 순간만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 온라인에서 누구보다도 1등이 되려 하는 이유도 최고의 플레이어로 변신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에 보상이 있을까? 생존을 위한 직업을 제외하곤 금전적인 보상은 찾기 힘들다. 게임을 잘한다고 해서 프로 게이머가 아닌 이상은 따로 주어지는 보상은 없다.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도 남편이 월급을 받고 아내가 만든 가짜 음식이 진짜 음식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어른들은 역할극을 한다. 왜냐면 재미라는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가적인 효과로 아이들은 역할극을 통해서 미리 어른의 세계를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다. 어른들도 이러한 효과를 이용해서 여러 상황들을 시뮬레이션한다. 군부대에서는 전쟁 게임을 통해 가상의 전쟁터에서 용사들의 용맹성이나 전략을 연습할 수 있다. 이른바 워 게임(War game)은 실제 군대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시뮬레이션 도구이다.

2aebba1abb1fea.jpg?w=780&h=30000 (나이가 들면서, 일부 게임은 심각해진다. 출처 : 라프 코스터의 재미 이론)


역할극이 가능한 이유는 진지함


흉내 놀이의 재미는 지독한 진지함에서 온다
도서 <스토리텔링 애니멀>


한 때 보바카페에서 거의 매일 한 시간가량 넘게 카운터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다. 바로 코로나가 극심해져 출근 자체가 힘들어질 때였다. 그 당시 여행은 고사하고 출근은 물론 산책조차 두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때 심심함을 달래주고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통로가 바로 보바카페 였다.


.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정말로 진지하게 일했다. 보바카페를 돌아다니며 신나게 시설을 이용하고 심지어 친구들도 불러 커피를 대접했다. 그러한 진지함 덕분에 실제 카페에서와 같이 사람들을 대하고 정말 카운터 종업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기에 처음 사진처럼 나름대로 영어 번역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매일 사람들을 대접하고 영어로 번역하며 대화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로블록스의 역할극에 집중하는 이유가 이해가 된다.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활동범위가 좁고 경험도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어른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곳은 가상 세계의 어른들의 장소이다. 카페나 술집(진짜 있다), 병원 등 다양한 역할극 놀이를 하는 이유는 진지하게 집중할 수 있는 장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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