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극이 미래의 먹거리다
지난번 레스토랑에서 진지하게 서빙하는 아이들(이라고 추측한다) 보고 “도대체 돈도 안 되는(?) 이런 일들을 하는 이유가 뭐냐?”라고 물었을 때 “단지 역할극을 할 뿐이야”라는 말을 듣고 한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어쩌면 우리들이 현실 외에도 또 하나의 현실, 가상현실을 원하은 것도 역할극을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실제로 로블록스에는 다양한 역할극 게임들이 있다. 카페, 식당뿐만 아니라 치과, 간호사 등 병원 쪽 역할극도 있다. 이번엔 치과놀이로 잠시 가보자.
위치 : https://www.roblox.com/games/542016179/Teethyz-Dentist
예를 들어 이곳에 가보면 실제 데스크에서 접수를 받는 사람과 이가 아파서 대기실에 기다리는 사람들, 의사들 모두가 따로 역할극을 한다. 어떤 환자는 자기 표정을 실제로 이가 아파 찡그리는 것으로 바꿔서 대기실에 기다리고 있다. 실제로 아픈 것도 아니고, 실제로 치료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장난으로 여기지 않고 진지하게 그리고 즐겁게 받아들인다.
사실 현실에서도 이미 역할극은 거대한 콘텐츠의 한 종류로 되어가고 있다. 이미 2021년 유튜브 크리에이터 리포트에서도 ASMR, 부케, 역할극에 관한 콘텐츠에 대해 언급한다.
영상 링크 : https://trendsreport.withyoutube.com
“개그맨 크리에이터들은 여러 명의 부케들을 만들어냈고 이 부케들은 비대면 데이트, 한사랑 산악회 등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에 나가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현실 속에 실제 존재할 법한 부케들과 그들이 만들어 나가는 거대한 세계관에 깊이 몰입함으로써 그 일부가 되어 소속감을 느끼고 같은 세계관을 즐기는 다른 사람들과도 유대감을 형성하게 됩니다.”
(영상 6:23부터 보시면 됩니다)
(실제로 지리 강의로 착각한 사람이 많다는 개그맨 문성훈 유튜브)
피식 대학의 비대면 데이트, 한사랑 산악회, 강유미의 ASMR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렇게 역할극은 콘텐츠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제목을 잠깐 읽어 보자.
보통 asmr 하면 귀를 파주거나 미용실 등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기 마련인데 제목이 특이하다.
'예금거래 기본약관' '여신거래 기본 약관' 등 상당히 특이한 소재를 다룬다.
채널 이름은 웃튜브인데 과연 누가 하는 것일까?
'김갑생'은 유튜브를 하면 한 번쯤은 알고리즘의 추천을 뜰 정도로 인기 있는 콘텐츠다. 김갑생이라는 가상의 김 회사의 CEO역할극을 하다 진짜 '성경김'회사와 합작해 김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다시 로블록스의 가상의 치과로 잠깐 되돌아가 보자.
이 캐릭터가 가상의 치료를 받는 것과
최근 유행하는 치과 롤플레이
그리고 사회의 반응이다.
이 세 가지 현상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든다. 단순히 아이들 게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이 가상의 역할극을 원하고 그 반응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 이미 롤플레이, 역할극은 사회를 움직이는 한 축이 되었다. 과거 아이들의 놀이나 특수한 분야의 시뮬레이션이 목적이 아닌 또 다른 목적이 생겼다.
실제 있을법한, 평소 내가 경험한 것과 같은,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닌,
이러한 감정들이 모여 현재의 역할극 산업을 만들고 있고 이것이 바로 공감대입니다.
과거에는 공감대는 심리적인 용어의 일부였다. 사회성이 좋은 사람을 지칭하거나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 필요한 소양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개인 창작자나 기업이 반드시 챙겨야 할 기본 소양이 되었다. 특히 네트워크 시대는 승자 독식의 세계다. 승리를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대가 필수 재료다. 이제 새로운 산업의 재료 중 가장 필요한 것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것 같은' '내 이야기 같아서'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로블록스 게임을 하면서 수많은 역할극을 할 수 있다. 지금도 가상의 치과에는 가상의 환자들이 몰려들고 있고 가상의 식당에서는 가상의 요리를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있다. 어릴 적 소꿉놀이를 보는 것 같다. 이제는 그 소꿉놀이가 진지한 사회 현상이 되고 또 미래의 먹거리가 되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미술 선생님(부원장)이었다. 그리고 수천번 수업을 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있다면 아이들은 미래 먹거리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엔 몰래 만화책을 보고 만화는 불량한 것이라 배웠다. 하지만 지금 수조 원의 웹툰 시장이 만들어지고 게임도 마찬가지다. (제 첫 번째 책, '아들 맘 육아 처방전'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엊그제 저와 함께 일했던 선생님을 만났다. 그 선생님이 대뜸 나에게,
"부원장님 말이 사실이었네요"
"뭐가요?"
"아이들은 미래 먹거리를 알고 있다는 거. 몇 년 전에 저에게 틱톡에 대해 이야기했던 거 기억하세요?"
그제야 대략 4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아이들이 내 폰에 자신들이 즐겨하는 앱들을 깔고 싶어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틱톡이었다. 그 당시 워낙 소란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하지만 여자아이고 남자아이고 모두 내 폰으로 영상을 찍고 편집을 했었다. 주위 선생님에게도 요즘 아이들이 이런 걸 좋아한다라고 하면서 틱톡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4년이 흘러서야 틱톡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어 인스타는 릴스를, 유튜브는 숏츠를 출시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기사를 접했다.
2019년부터 이미 미국에서는 틱톡이 타 SNS를 밀어버리는, 그야말로 괴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지금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의미 없지만, 저는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이 가장 귀신같이 미래 먹거리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아이들과 꾸준히 로블록스를 하는 이유도 단순히 노는 것뿐만이 아니라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관찰 행위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학원을 그만둔 선생님과 여전히 게임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에 좋아하고 있다. 어떤 아이는 대놓고 저에게 "개이득 ㅋㅋㅋ"이라고 하면서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개이득ㅋㅋㅋ"은 나일 것이다.
앞으로도 아이들과 로블록스를 할 것이다. 이제 인원이 계속 20명 이상 늘어나 정신이 없다. 수업할 때 보다 더 정신없다. 조용히 하라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이들은 자신이 찾은 게임을, 자기가 요즘 좋아하는 것들을 쉴 새 없이 말한다. 아이들과 신나게 놀면서도 한편으론 미래의 먹거리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