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자 했어요?"
처음 만나면 많이들 묻는다. 물론 자기소개서야 거창하고 진지하고 묵직한 얘기를 제법 써뒀지만 불쑥 들어오는 질문에 가장 적당한 대답은 "살다 보니 어쩌다가요"였다. 이렇게 답하면 다들 어떻게 살다 보니 어쩌다 기자가 될 수 있냐고, 그게 가능한 직업이냐고 묻지만 정말이다. 살다 보니 어쩌다. 고등학생 때 아나운서를 꿈꾸기 시작해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고 대학 4년 내내 아나운서 레슨을 받던 내가 마지막 학기 재학 중에 얼떨결에 기자가 됐다. 정말 살다 보니 어느 날 '노트북 들고 다니는 대학생'에서 '노트북 들고 기사 쓰러 가야 하는 기자'가 된 거다.
성격은 비서가 딱인데
한 때 나는 비서를 하면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입밖에 꺼내보지 못한 막연한 꿈이기도 했다. 계획 짜는 걸 정말 좋아했으니까. 취업을 일찍 한 것도, 꽤나 많은 일을 하는 것도, 하루 24시간을 꽉 채워 사는 것도 이 성격 덕이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정말 1년에 다이어리를 몇 권씩 썼다. 일기장, 스터디플래너, 공부 외적인 것들을 적는 스케줄러, 생각나는 것들을 끄적이는 백지 노트 등등. 계획을 짜고 빈칸을 채워나가는 걸 그냥 즐긴다. (내가 생각해도 살짝 무섭다.)
그래서였는지 입사 초반 꽤나 방황했다. 자기소개서에 담긴 거창한 이유는 신입사원에게는 그저 꿈이었다. 아니 좀 더 솔직하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퇴사할 때까지, 내가 죽을 때까지 절대로 못 이룰 꿈이었다. 꿈이 없고 목표가 없으면 계획을 못 세우는 나였고, 계획이 없으면 방황하는 나다. 매일 새벽에 출근하면서 다이어리가 텅 빈 날이 반복되자 나는 어느 날부터 방황하기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그 방황하던 시기에 기댈 곳이 없었다는 거다. 일찍 취업을 한 나를 향하는 축하와 부러움, 부모님과 교수님들의 기대 앞에서 나는 티를 낼 수가 없었다. 나의 방황을 솔직히 털어놓기에 내 친구들은 아직 취업이 너무나 간절한 대학생이었으며, 나의 친한 언니, 오빠들에게 취업은 더욱더 간절했다. 그래서 기댈 곳 없이 시작한 나의 방황은 어느샌가 '버텨야 한다'라는 압박으로 이어졌다. 다들 성공했다 말하지만 나 스스로는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한 채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로. '나 지금 숨이 막혀. 나는 이 사원증이 너무 버거워 지금.'
'뭘 해도 잘할 거야'
이 말 한마디가 쏘아 올린 나의 늦은 사춘기
사람들은 내게 스물셋 그 나이에 회사를 들어오지 말았어야 한다고 했다. 회사 선배들도 학교 선배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분명히 후회할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방황이 커지면서 사람들은 또 내게 말했다. '뭘 해도 잘할 거라고'
'그럼 나는 뭘 해야 제일 잘할까'라는 답 없는 질문과 스물다섯에 찾아온 사춘기가 맞물리면서 나는 모든 것에서 멈춰 섰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와 무리한 스케줄로 인해 바닥나 버린 내 체력은 정말 최악의 시너지를 만들어내 이상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피곤하고 기운이 없으니 매일 새벽마다 마셨던 피로회복제는 그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혈압은 정상 기준 아래로 떨어졌고 살은 계속 빠졌다. 매일 같이 울어대는 탓에 눈가의 살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이유 없이 열이 나고 머리가 깨질듯한 두통에 할 수 있는 건 그저 누워있는 것 밖에 없었다. 완전히 무너져버린 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시도 때도 없이 울면서 후회만 했다.
아파봤고, 무너져봤고, 울어봐서 복귀를 결정하는 건 정말 어려웠다. 얼마나 힘들지 알면서도 '좋아해서' 딱 이 한 가지 이유가 다시 뛰어들게 했다. 이 선택이 정답이라는 순진한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어떤 선택이 반드시 옳고, 어떤 길이 정답이라고 여길 만큼 어리지 않으니까. 무엇을 고르든 언젠가는 반드시 후회할 선택이었을 거다.
살면서 하는 선택 중에 정답은 없다. 그저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할 뿐.
대신 이 순간 나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있다. 복귀를 고민하는 그때의 나에게 수도 없이 던졌던 질문.
다시, 뉴스 할 준비 됐어?
이 질문이 곧 제 에세이의 제목이자, 이제야 비로소 마주하기 시작한 기억들의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