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이순신 장군님의 난중일기는 나라를 잃을 위기 상황 속 인간의 고뇌가 담긴 훌륭한 기록물이다. 거기에 비해 나의 난중일기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이기만 하지만 내 인생 가장 어지러운 난세인 점으로는 틀림없는 공통점이라 할 수 있겠다.
난리통인 내 맘과는 달리 난임 치료 자체는 무척 체계적이다. 우선 모자보건법에 의한 난임부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남성은 정자검사를 해야 하고, 여성은 나팔관 조영술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그것이 첫 시작이다.
그리고 '시험관 시술'의 대표 연관 검색어는 다름 아닌 '주사 지옥'이란 생각이 드는데 시험관 시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어렴풋하게나마 들어보았을 것이다. 의료진도 아닌 내가 '셀프 주사'를 놓다니!
그렇지만 쌓여가는 주사기 무덤에 묻히기 전에 또 하나의 지독한 관문이 있다. 바로 '초음파 지옥'이다. 주 5일 최소 8시간을 직장에 매여 사는 직장인에게 '잦은 진료'야말로 험난한 길이다. 난자 채취를 하기 직전에는 주 2회 초음파를 보러 병원을 다녔고, 가장 적당한 난자 채취일에 직장 스케줄을 조율하지 못해 교수님과 나 모두가 난감했던 적도 있다. 이렇게 매일 내 뱃살을 한웅큼 쥐고 주사를 놓는 것은 물론이요 개인 연차도 영끌하여야 한다.
매일 일정 시간에 놓치면 안되는 약, 주사, 질정 스케줄 알람이다.
나는 한 사이클을 경험하는데 약 3개월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100일 중에서는 100년 같이 길게 느껴지던 피 말리는 순간도 있었다. 병원에서 '비임신'이란 전화를 받은 후에는 착잡함과 허탈감에 휩싸인다. 그렇지만 추운 마음을 잘 감싸매 내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줘야 한다. 남편의 위로가 그리고 가족의 응원이 물론 도움이 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 돌봄'이다. 셀프로 주사를 놓듯 셀프 돌봄도 잊지 말자.
모든 인생에서 불확실성을 가지지 않은 생이 어디 있겠냐만은 '자기의 영원한 미래가 자식이란 점'에서 '그 자식을 계획하는' 난임 치료는 그야말로 불확실성의 정점에 놓여있는 셈이다.
하지만 살아내야 하니 어쩌겠는가. 이왕 선택한 것이라면 (난임치료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불확실성과) 더불어 살아보는 것이 좋으니 이 우연과 인연 그리고 확률로 이뤄진 현재를 신명나게 기록해보려 한다. 그리고 단 한명에게라도 위로가 되기를 짧더라도 반가운 공감을 경험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나는 난임 센터에 소속된 상담사는 아니지만 난임을 주제로 상담을 한 경험은 다수 있다. 난임 상담사가 직접 겪는 난임과 그리고 마음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일상 속에서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하는 셀프 돌봄의 방법들을 나눠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