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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마니 Nov 27. 2023

1년 새 정자가 많이도 죽었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나눴던 수많은 대화와 계획 중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내 계좌를 한눈에', '내 카드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서로에게 계좌 통합 조회를 공유했다. 이를 통해 건조하고 퍽퍽한 서울에서 어떻게 집을 구할 것인지에 대한 당장의 계획을 세웠고, 앞으로 평균 수명을 고려하여 최소 50년가량의 경제적 생활과 노후 준비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둘째, 자녀 계획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나눴다. 예측 가능한 선의 미래 벌이와 현재 모아둔 현금 등을 고려할 때 '아이는 하나만'에 협의를 했다.


셋째, 서로의 건강 상태에 대해 날 것 그대로 공유했다. 2003년 우리 엄마는 임파선암으로 돌아가셨다.

2018년 남편은 녹내장 진단을 받았다. 암에 대한 가족력과 남편의 만성 질환, 그리고 최악의 경우 실명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우리 부부의 마음 중심부에 꽈리를 틀어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하고 무거운 두려움에는'건강', '실명', '유전'이란 이슈가 있다. 자주 가까이 가기에 너무나 치명적이고 무서워서 평소에는 가급적 잘 언급하지 않고, 조금은 강박적으로 건강관리를 실천하표면상 눈에 보이는 행동과 계획들에만 몰두를 하 편이다).


결혼 전 우리에게 자녀 계획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나의 가족력이 발현되지 않도록 하고, 남편의 녹내장 진행을 늦추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 유지에 대한 계획 계획만으로 그치지 않도록 행동으로 실천했고, 통장을 합치듯 생활 습관도 합일시켰다. 와중에 정자와 자궁 검사도 진행하다. 나는 산부인과에서 자궁경부암, 난소, 자궁 초음파 검사를 받았고 남편은 비뇨기과에서 정자 검사를 받았다. 정자가 건강하다는 기준에서는 세 가지 기준에 충족이 되어야 하는데 남편은 자랑스럽게 내게 말해줬다. 정자의 수, 운동성과 형태 모두 30대 초반 평균 남성들과 비교해 월등하다고 말이다.


그런데 정확히 1년 6개월이 지난 시기 남편의 정자 검사 결과가 뒤집혔다. 세 가지 기준에서 중요한 요인 두 가지가 미달되었는데 정자 운동성과 형태 이상이 많다는 소견을 들은 것이다. 남편은 믿기 힘들어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인 나자궁 초음파, 자궁 내벽 등 큰 이상이 없었다. 

난임 클리닉 교수님은 조심스럽지만 명확하게 우리에게 권고했다. '현 상황에서는 자연 임신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이다. 또한, '인공수정도 의미는 없을 것이다. 자녀 계획이 있으시다면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셔야 한다'라고. 교수님은 우선 쉽지 않은 여정일 테니 부부가 의논을 해보고 전화를 달라고 하셨지만 그 자리에서 우리는 결정을 내렸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결정을 한 것이다. 고민을 할 것도 없었다. 남편은 미안함에 내게 모든 결정을 맡기겠다고 하였다. 시험관 시술의 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의 의지와 협조니까 말이다. 예상했던 그리고 알고 있던 결과몹시 달라 당황스러웠지만 우리의 자녀 계획은 명확했고, 의미 없는 확률 싸움에 매달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앞으로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시험관 시술을 할 생각에 절망감 혹은 좌절감은 달리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미래 계획에 가타부타 부정적인 감정을 덧붙이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 건강 즉 스트레스 수준이 신체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내가 간과했다는 점에 대해 입은 벌어지는데 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결혼 남편은 업무 스트레스로 내내 스트레스를 달고 살았다). 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고 하였던가? 

그저 신혼부부는 세상이 핑크빛이고, 꿀이 뚝뚝 떨어져서 결혼과 동시에(*적어도 신혼기간만큼이라도) 정서적 안녕감, 마음의 평화와 안정은 그냥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정신건강 전문 요원인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니. 이 얼마나 순진하기도 하고, 무식하기도 한 생각이냔 말이지.

계획형 인간인 나는 우리 부부의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전략을 세울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진료 시간은 이미 자체적으로 마친 상황이었다.


시술 일정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남편은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듯 마무리되어가던 우리의 진료 시간을 잠시 붙잡는다.

"1년 사이 이렇게까지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나요..?"

남편이 어렵사리 꺼낸 질문을 듣고, 안쓰러운 마음이 올라온다. '당연히 나보다 본인이 더 놀랐겠지..' 싶어 놀란 내 가슴만 진정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교수님은 설명을 덧붙이셨다. "정자 개체 특성상 'variation'이 커요."라고. 즉 검사 결과의 편차, 유동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자는 난자와 달리 3개월마다 새로 만들어지기를  반복하기 때문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우리 부부는 희망 아닌 희망을 얻었다. 물론 자연 임신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남편의 생산성 즉 자존감을 지켜낼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남성성과 직결되는 '정자'가 상황과 여러 변인에 따라 좋아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스트레스 관리 전략 하나,

놀란 우리 부부의 마음을 진정할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두고 대화하고, 있는 그대로의 현 상황을 수용하는 것이다.



1년 새 정자가 많이도 죽었다.

풀은 죽으면 안 되니, 내가 더 잘해줄게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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