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이 아픈 러너에게, 상처가 많은 그대에게
이 브런치 글은 오디오북처럼 들을 수도 있어요.
러닝을 이제 막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러닝 첫날, 탁 트인 한강을 보며 희망찬 기분으로 기대를 안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릎에 통증이 왔다. 다음 러닝도, 그다음 러닝도, 열심히 해보려고 하는데 달릴 때마다 자꾸만 무릎이 아팠다. 달리기를 시작하면 처음엔 괜찮다가 10분이나 15분 정도 지나면 조금씩 무릎에 느낌이 온다. 그 후로는 달리는 강도와 시간에 비례해서 통증은 커진다. 달리다가 결국 무릎이 아파 중도에 달리기를 멈추고 걸을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의욕적으로 러닝을 시작했는데 낙심되는 마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바닥 탓인가 하고 우레탄 코스가 있는 곳으로 러닝코스를 바꿨다. 그래도 무릎이 아팠다. '러닝도 장비빨이라 신발이 중요하다'는 말을 어디서 들어서 그 길로 새 러닝화를 샀다. 하지만 무릎 통증은 러닝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 러닝만 하면 이러네. 나는 러닝에 안 맞는 사람인가 봐'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축구하기 좋아하고 틈만 나면 뛰어다니던 활동적인 사람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싶었다.
"달리기를 하면 아프다...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난 처음에 꽤 특별한 취미로서 러닝을 한다고 생각했다. 축구, 야구, 서핑, 클라이밍, 테니스를 취미로 시작하듯 러닝이란 운동을 선택해서 시작했다. 근데 생각해보자. 러닝은 달리기다. 아니, 사람이 자신의 발로 그저 달린다는데 이게 안 맞는다는 말이 과연 맞는 말일까. 신이 사람을 만들었는데 뛴다는 기본적인 동작을 한다는 이유로 무릎이 상하도록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러닝을 시작해서 무릎이 아프다면 대부분은 익숙하지 않은 운동을 이제 막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사람에게 러닝은 무릎이 위험할 만큼 과격한 운동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도 통증이 느껴지는데, 특히 근육도 아니고 관절 통증이 느껴지는데 우직하게만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친구에게 새로운 러닝 방법을 배웠다. 그동안 나는 착실하게 발 뒤꿈치부터 땅에 대고 발 전체로 디디며 뛰었는데, 친구는 나에게 발의 중간부터 디디며 뛰어보라고 했다. 처음엔 굉장히 어색했다. 스텝이 자꾸 꼬여서 한강에서 혼자 우스꽝스럽게 뛰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나서 지금은 무릎 통증 걱정 없이 너무 잘 뛰고 있다.
이 달리기 방법을 포어풋 혹은 미드풋이라고 한다. 발을 디딜 때, 앞꿈치 부근의 아치가 시작되는 지점부터 디디면서 앞꿈치 전체적으로 중량이 퍼지게 하며 뛰는 것이다. 뒤꿈치는 땅에 디디지 않거나 살짝 디딜 정도까지만 내려간다. 그럼 무릎이 몸의 하중을 받는 시간이 늘어서 완충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즉, 무릎에 충격이 덜 오게 되는 것이다. 팁으로서 포어풋에 대한 내 느낌을 말하자면 내 몸을 살짝 스프링으로 만드는 것이다. 발을 디딜 때마다 내 몸이 목석처럼 땅에 부딪히는 게 아니라, 발 전체가 스프링처럼 유연해지는 것이다.
단점도 있다. 이렇게 뛰면 발이 아프다. 정확히는 발 근육, 특히 종아리가 아프다. 그래서 이렇게 뛰기 더 힘들다. 하지만 이 과정을 근육 단련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실제로 무릎 관절이 충격을 받는 대신, 근육이 하중을 받아 일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러닝은 몸의 심폐력과 근력을 좋게 하기 위한 운동이지 않은가.
가만히 생각하면 참 재밌다. 러닝 코스를 우레탄 코스로 바꾸고, 신발을 좋은 러닝화로 바꿔도 해결되지 않던 무릎 통증이 내가 유연해지니 해결됐다. 내 통증이 내가 달리는 바닥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내 인간관계의 고통도 환경만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왜 내 땅은 좋은 우레탄 코스가 아닌 거야?'라고 애꿎은 바닥만 불평한 것은 아니었을까. 목석처럼 나 자신의 자존심만 꼿꼿이 세우다가 조그만 충격에도 온몸이 띵~하는 통증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바뀔 수도 있는 문제인데. 내가 조금은 스프링처럼 유연하게 반응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내 못난 자존심이 항상 문제다. 가족들과 시시콜콜 부딪히는 것도, 친구와 이유를 알 수 없이 서먹해지는 일도, 연인과 사소한 것으로 크게 다투는 일도, 직장에서 애매한 사이가 그렇게 많은 것도 우레탄 바닥이 아니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스프링처럼 유연해지기. 어정쩡하게 뛰게 되고, 종아리에는 알이 배길 테지만, 언젠가 이것도 힘들지 않은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못난 자존심의 소유자였다는 사실도 잊고, 자연스럽게, 또 아프지 않게, 그렇게 탁 트인 한강 코스를 달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