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yu May 24. 2022

의정부고 뺨은 못 쳤습니다

그래도 즐거웠으면 됐지

 6학년 고유 행사 중 학생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수학여행과 졸업앨범 촬영이다. 아쉽게도 코로나19의 여파로 두 행사 모두 축소하여 진행하거나 취소된 적도 있다. 큰 기다림으로 수학여행을 기대하는 학생들에게 올해는 갈 수 없다고 알렸던 내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다. 아쉽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과 수학여행에 가서 함께 웃고 놀고 떠들며 친해지는 게 내 로망이기도 했다. 부산 단골 수학여행지인 용인 한국민속촌에 가지 않고 아껴둔 이유도 아이들과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였다.


 행사 자체가 줄어드니 졸업앨범에 실을 수 있는 사진 수도 자연스럽게 줄게 됐다. 햇살 좋은 날 뛰어놀거나, 오순도순 걷고 있거나,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으로 도배돼야 할 졸업앨범이 칙칙하기만 했다. 가뭄에 콩 나듯 간 현장체험학습 사진들은 마스크 때문에 전부 생기가 덜했다. 설상가상으로 마스크를 벗고 찍은 사진들도 썩 잘 나오진 않았다. 사진 기사님의 철학이 어떤지 모르겠으나 실물의 단점을 부각하는 촬영법이나 편집법이 불만스러웠다. 물론 학생들의 표정 자체가 어색하니 잘 나온 사진을 찾는 게 힘드실 거 같긴 하다. 내가 다 속상했다. 앨범을 나눠주며 실망할 수 있다는 걸 경고해주고 한 마디를 남겼다.

 "절대 졸업앨범 사진 찢거나 훼손하지 마! 나중에 가면 그게 다 추억이고 감초야. 선생님이 찢어봐서 아는 거니까 내가 너무 못나게 나와도 찢지 말기!"


 그래도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코로나 상황이 양호해져서 수학여행도 나름의 틀을 갖추고 진행할 수 있게 됐다. 학사 일정이 돌아와서 그런지 아이들의 활기찬 모습과 밝은 웃음도 돌아왔다. 가을에 갈 수학여행 얘기는 어떤 수업의 동기유발로 활용해도 무방하다. 두 수를 비교하는 수학 수업 때, 롯데월드에서 타고 싶은 놀이기구 얘기를 하며 진행했더니 나 또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웠다. 사회 시간에 수학여행지로 투표를 하며 민주주의를 배우는 거도 도움이 됐다.


 행사가 늘어나니 졸업앨범에 실을 사진이 덩달아 많아져서 올해는 마뜩한 사진들이 많을 거 같다. 어서 앨범을 받아 보고 싶은 기대가 생기는 건 행사 사진도 사진이지만 학생들의 참여도가 남달랐던 점도 있다. 간단하게 화장 정도만 하는 학생들은 봤지만 의상을 여러 벌 챙겨 오고 소품까지 철저하게 준비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전날에 그룹 사진 포즈도 정했는데 사진에 소극적인 남학생들도 열을 띠며 피라미드도 만들었다가 별도 만들었다가 파워레인저까지 등장했다.


 촬영 당일. 생각지도 못한 소품과 의상들이 보였다. 다른 반에는 손오공 커플이 있었고, 한복을 빌려 온 학생도 한 명 있었다. 우리 반 학생과 같은 곳에서 대여한 것 같았다. 방과 후에 다시 한복을 입고 한복 커플샷을 찍은 걸 보면 아마 어머니와 학생 두 명 모두 친한 게 아닐까. 경찰을 연상시키는 의상과 장난감 수갑을 챙겨 온 학생도 볼만 했다. 표정이 나름 심각한 게 자신의 역할에 깊게 이입한 게 분명했다. 그 외에도 오리 의상, 머니건, 유아용 공주 액세서리 등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방에 옷을 한 벌 더 들고 와 개인 사진과 단체 사진의 의상에 차이를 주는 치밀함에 나도 고수처럼 추임새를 넣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진을 찍다가 올라오니 우리 반만 무려 한 시간 동안 촬영을 했더랬다. 땡볕에서 고생하신 사진 기사님에게 감사드린다. 졸업앨범 촬영을 멋들어지게 즐겨준 6-4에게도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범준 노래는 안 틀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