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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May 31. 2022

김영란 씨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거는 받았어야 했어요

 벌레를 싫어하는 조카와 서둘러 오두막을 나왔다. 나는 식욕이 없었고 조카는 벌레에 신경 쓰느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고함을 꽥꽥 지르며 오두막 안에 있는 가족들을 괴롭게 하길래 삼촌이랑 놀러 가자며 꼬드겨 나왔다. 식당 앞 가로수길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펴 있었다. 바람에 흩날려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던 조카는 멈춰 서서 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주웠다.

 "삼촌, 이거 들고 있어. 엄마랑 할머니 줄 거야."

 좋은 걸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나고 그걸 공유하고 싶은 건 어린아이도 마찬가지다. 조카의 세상 속에는 엄마, 아빠, 동원 할머니 댁, 멍멍이 할머니 댁, 유치원 정도의 사람이 살고 있을 텐데 그중에 엄마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는 건 엄마에게 큰 영광이다. 그 마음이 예쁘고 갸륵하긴 하나 결국 짐이 되는 꽃잎을 쥐고 조카에게 말했다.

 "엄마랑 할머니가 너무 좋아하겠다! 근데 이걸 보관할 곳이 없으니까 버렸다가 엄마랑 할머니 데리고 여기에 오는 건 어때?"

 조카가 흔쾌히 좋다고 얘기해줘서 다행이다. 요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싫어'인데 기분이 좋은가보다.


 4월은 견뎌야 하는 날이 많았다. 사는 게 그냥 살아지는 게 아니라 형체도 없는 '욕심, 교만'이라는 적과 싸워 이겨내려고, 견디려고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성경에 매달려야 하는 날이 많았다. 아주 초순에는 수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서 하루는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선생님 표정이 안 좋아 보이고 힘들어 보여도 너희들에게 화 난 게 아니니 그러려니 해주고 이해 좀 해달라고. 얌전히 '네' 하고 얘기해준 아이들에게 고마웠으나 그날도 아이들이 싸우는 바람에 꽤 힘든 날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방과 후, 반에 멍하니 앉아 업무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는데 평소에 조용하던 학생이 교실 앞문을 수줍게 열고 들어왔다. 뭘 놓고 하교를 했다며 자기 자리로 향하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교탁 앞으로 왔다.

 "선생님, 이거요."

 부끄럽게 내민 손에는 비타 500 한 병이 들려 있었다. 힘드시다고 하셔서 힘내시라고 사 왔다는 학생. 내 평생 이렇게 사람에게 위로받아 본 일이 손에 꼽는데 아직 13살밖에 안 된 학생 한 명이 내 세상을 뒤흔들고 홀연 교실을 떠났다. 그러고 보니 생일 축하한다며 학생들이 써준 편지들이 서랍에 가득했다.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옆 반 선생님들에게 물어서 축하파티도 해주고 편지도 써줬다. 아무래도 그날, 값을 매길 수 없는 마음을 받은 거 같은데 신고당한다고 한들 슬프기만 할까.


 5월에는 현장체험학습으로 식품관에 갔다. 반을 두 그룹으로 나눠 이동하는 형태라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학생들과 같이 이동하며 쌀의 변천사에 대해 듣고 있었는데 학생들은 낱알을 하나씩 만져보고 가져가기도 하며 열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활동이 끝나고 자리를 이동하려는 찰나, 한 학생이 와서 자신이 관찰했던 낱알을 건넸다.

 "선생님 드릴게요."

 낱알은 쓰레기를 처리하듯 줬지만 그 학생이 준 건 사실 낱알이 아니다. 수업이 좀 지루하니 장난 한번 치고는 싶은데 뭐 재밌는 거 없을까 두리번거리다 걸린 게 나였다. '어떻게 장난을 쳐야 재밌을까', '선생님도 곤란하지 않고 나도 혼나지 않을 장난이 뭘까' 곰곰이 고민했을 것이다. 학생은 '우리 좀 친해져요'하는 관심을 낱알로 고백한 거다.


 스승의 날에는 휴대폰 플래시 콘서트도 받았고 종종 사랑한다는 단체 고백을 받는다. 잘생겼다는 찬사와 호응을 받을 때도 있다(밖에 나가자는 의미이긴 하지만). 작년 졸업생들이 찾아와서 커피를 주고 가기도 했다. 너무 받기만 하는 거 같아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더니 '아, 하루에 5명은 꼭 칭찬해 줘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렇게 하루 5명-6명 칭찬을 진행하다 보니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하게 됐다. 꼭 그 5-6명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의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억지스럽지 않게 칭찬하고 고맙다고 표현하니 출근하는 기분이 달라졌다. 분명 내가 칭찬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칭찬해주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주려고 했던 칭찬이 되려 나에게 돌아왔다. 기쁘고 감사한 나머지 무릎을 꿇고 감사를 고백했더니 왜 내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돼야 했는지 알게 됐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넘쳐흐르는, 선생님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는, 벅차서 눈물이 흐르기도 하는 그것들을 나에게 주고 싶으셨던 거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시작하니 사랑을 준 게 아니라 받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 걸까. 심지어 오늘은 금연 캠페인을 하는 우리 반 학생에게 '노담' 스티커를 받았다(난 흡연자가 아니다). 김영란 씨가 분기탱천할까 걱정되긴 하지만 법에 명시된 건 '금액'이니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에 한해서 받는 건 괜찮지 않을까. 초등학교 선생님의 장점을 얘기할 때면 '개인 사무실', '방학' 등을 들었는데 이제는 가장 먼저 '아이들'을 얘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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