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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n 04. 2022

군대 트라우마

월요일은 전담이 하나도 없고 화-수는 전담이 하나씩 있다. 당연히 월-수는 목이 아프다. 활동이 없는 수업으로 6교시를 모두 구성할 경우 어떤 방식으로 말을 해도 목이 따갑다. 시끄러울 땐 침묵이 더 효과적이지만 그거도 눈치가 있는 학생들의 경우고 어수선함이 적당할 때의 얘기다. 올해는 수다를 절대 멈추지 않는, 바야흐로 춘추전국 방송국 시대다.


 수요일 4교시, 커다란 풍선이 실험 후에 몇 개 남아서 제대로 된 풍선 펜싱을 했다. 체육을 하거나 게임을 할 땐 속닥거리 듯 얘기해도 아이들은 집중한다. 체육과 게임을 인질로 삼았다고 보면 된다. 조용조용 추가 룰을 설명했는데 목이 이상했다. 코와 목 사이, 간질간질 따끔따끔한 게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아무래도 긴급하게 자가 키트를 해봐야 할 거 같았다. 결과는 '음성'. 그래도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이 아팠다. 집에 가는 길에 이비인후과에서 처방만 받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저녁 약, 비타민c, 유자차까지 먹은 후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여전히 목이 아팠다. 인후라는 게 평소에는 존재감 없이 잘 있다가 간혹 붓는다던지 결석을 만든다던지 해서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좀 더 점잖은 방법을 찾았으면 싶지만 붓는 방법 외에는 자신을 알릴 길이 없나 보다. 목을 찢고 나올 수도 코를 뚫고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보건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고 조금은 여유로운 출근을 준비했다. 집에서 키트를 해봤으나 출근을 하려면 전문기관의 음성 확인서가 필요했다. 아프면 하루 빠지고도 싶지만 보결 들어오는 선생님의 기분을 너무나 잘 알기에 쉬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을게 뻔하다.


 2교시가 끝나기 10분 전. 음성 확인서를 들고 교무실로 내려가고 있는데 우리 반 학생 한 명이 화장실을 가는 길에 나와 마주쳤다. 짧게 인사하고 쌩 지나갔는데 그 학생이 반으로 가서 나의 복귀 소식을 전한 거 같다. 종이 치고 연구실로 우르르 몰려오는 학생들이 투명한 유리창 앞에 옹기종기 모여 날 구경했다. 악어가 언제 움직일까 기대하며 끈질기게 지켜보는 아이들처럼 서 있으니 팬 서비스 차원에서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선생님 어디 갔다 왔어요?"

 "아파요? 괜찮아요?"

 "어디 가는 거 아니죠?"


 순간 학기 초에 아이들이 썼던 자기소개서가 생각났다.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을 쓰는 란에 '선생님은 군대 가지 마세요'라고 적힌 종이가 많았다. 작년에 5-1반 담임과 체육 전담 선생님이 학기 중 떠났는데 4층이 떠나가라 울고불고 난리였다. 올해 애들이 그런 아이들이었다. 잔정이 많고 눈물도 많다. 내가 1-2교시 코로나로 빠지자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조마조마했단다. 남의 자식도 이런데 내 자식은 얼마나 예쁠까. 함함하다 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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