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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n 09. 2022

햄버거 가게 사장님들, 죄송합니다

개인적으로 브랜드 버거를 선호합니다

 6학년 사회는 가르치는 나도 재미가 없다. 1학기는 가르칠 내용이라도 있는데 2학기는 점입가경이다. 2학기 2단원은 도덕 교과서와 내용이 중복돼 곤란할 때도 많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모둠 활동이 금지돼 재미없는 걸 재미없게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관성의 법칙으로 올해도 모둠 활동이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작년과 비슷하게 가르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인디스쿨(초등 선생님 공유 플랫폼)에  접속을 안 하다가 다른 반 선생님들에게 자극을 받아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모둠 토의 활동이나 협동 작품 등이 게시글로 업데이트된 걸 보니 학교도 원상복구 중인 걸 실감했다.


 학생들을 집에 보내고 연구실에서 복사하고 있었는데 파쇄기에 올려져 있는 프린트물을 발견했다. '햄버거 가게를 지켜라'라는 활동이었다. 사회 2단원 경제는 그나마 흥미로운 활동을 구상할 여지가 있는데 '기업의 합리적인 선택'을 가르치는 차시였다. 옆 반 선생님이 복사하고 남은 거 같길래 슬쩍 찾아가,

 "선생님, 이거 저희 반도 좀 복사해서 쓸 수 있을까요?"

 "아, 그거 저도 인디(인디스쿨)에서 찾은 거예요. 지금 보내드릴게요."

 능력자 선생님들 덕분에 사회 시간 두 시간 벌었다.


 활동지를 나눠줄 땐 꼭 의기양양하게 '선생님이 이거 만든다고 고생했어'하고 잰 채 해주는 게 포인트다. 의례 사회 시간은 잠 오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들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등수를 매기지 않고 자유롭게 만들게 했더니 예상보다 작품의 질이 뛰어났다. 광고 포스터를 보니 확실히 올해 아이들은 미술을 잘한다. 당연히 모두의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다. '이걸 이렇게 쌓는다고? 햄버거 사진 본 적 없나?' 싶은 포스터도 있었지만 함구했다. 속으로만 피식하고 말았다.

 가보고 싶은 가게를 고르려고 하니 역시 포스터가 깔끔한 가게가 눈에 띄었다. 도라에몽이 그려진 가게, 패티리아 두 곳이 맛있어 보였다. 마지막 베이컨 에그 버거도 디자인은 나쁘지 않았으나 개인적으로 좀 더 자극적인 햄버거가 입맛에 맞다. 베이컨 에그이려면 소스가 스위트 어니언이나 레드 와인 와사비처럼 특색 있거나 렌치처럼 죽여주게 기름져야 한다. 그래서 맥모닝은 별로다.


 기발하다고 생각했던 건 할인 표시를 한 모둠들이다. 할인가뿐만 아니라 원가도 노출시켜 이 버거를 먹는 게 얼마나 이득인지 심리전을 펼쳤다. 평소 광고나 마트 진열대에서 물건을 잘 관찰하지 않았을까. 그런 아이들은 이게 상술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터. 역시 6학년은 똑똑하다.


 포스터를 보고 학생들이 직접 투표했다. 일인당 스티커 두 장씩 나눠주고 모둠별로 나와 투표를 했는데 결과는 도라에몽팀과 패티리아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보는 눈은 다 고만고만한가 보다. 경쟁을 붙이지 않았더니 무탈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열심히 참여해주니 덩달아 신났다. 오랜만에 숨통이 좀 트이는 사회 시간이었다. 수업에서 내가 해야 하는 말은 줄이고 학생들이 더 많이 참여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많이 부족하다. 6학년 3년 했다고 수업 연구를 게을리하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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