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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n 14. 2022

니들이 인생을 알아?!

 사회 시간에 인기 있는 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인생 게임'이다. 주말에 칩거하며 TV 시청을 하던 사람이 된다던지, 오늘 같은 경우에는 우유 회사 사장이 되기도 한다. 우유 회사 사장이 된 이유는 '우리 경제 체제의 특징'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자유와 경쟁. '소비자는 원하는 제품을 살 수 있고 기업은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다. 기업끼리 가격 경쟁을 하기도 하고, 개인이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경쟁하기도 한다' 정도의 내용을 가르치면 된다. 사회 책 부록에 있는 활동을 참고하여 제작했는데 슬라이드를 만들면서도 꽤 웃었던 기억이 있다.


 먼저 회사를 설립한 각 모둠은 우유를 개발하기 위해 '최고급 젖소 구입, 새벽 배달 서비스. 소비자 불만 친절 접수' 등에 투자한다. 그리고 상황이 발발한다. SNS에서 블루베리 맛 우유가 인기가 있었으니 다양한 맛을 개발한 기업에 추가 이윤을 주고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키는 등의 교사 입맛형 상황을 9가지 정도 발표한다. 나름 반전을 주기 위해 1-8가지 상황에서 '이유 불문! 가장 싼 우유가 좋아!' 상황을 두 번 넣고 학생들이 우유를 최대한 저렴하게 제작하도록 유도했다. 반전은 마지막 9번 상황에서 일어난다. '우유도 이제 럭셔리 우유 시대! 제일 비싼 우유가 짱!' 상황에 파격적인 이윤과 브랜드 가치를 부여한다. 뚝심 있게 최고급을 지향한 기업이 마지막에 승리의 기를 잡는 편이다. 애덤 스미스가 환생해도 예측 불가능한 요즘 소비 트렌드를 반영해 보려고 노력했다.


 보면 볼수록 우리 반은 경쟁보단 자유롭게 담화를 펼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사랑하는 거 같다. 물론 급식 순서를 걸고 진행했지만 큰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 유형의 활동이 대부분 자유롭게 의견을 펼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화면에 등장하는 상황에 환호를 질렀다 탄성도 내뱉었다 다양한 반응을 보고 있자니 인생의 희로애락이 여기에 다 있었다. 9가지 상황은 금방 끝이 났다. 돈을 많이 번 모둠도 있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 올린 모둠도 있었는데 두 점수를 합해 결과를 냈다. 아무래도 자신의 선택이 경쟁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게임이라 그런지 입이 대빨 튀어나온 학생은 없었다. 분위기를 정리하고 자유와 경쟁에 대해 좀 설명을 하려 했더니 금세 풀이 죽어 수업 시간 모드로 돌아갔다. 다행히 곧장 엎드리지는 않았다. 속보이게 솔직한 아이들이다.

 '얘들아, 수업에 재밌는 게임을 했으면 수업도 좀 재밌게 참여해주면 안 될까?'


 6학년 1학기 사회는 학생들이 실생활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다. 정치나 경제는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눈을 돌리면 언제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이슈다. 괜히 거창하게 들리는 단어 같지만 6학년 수준에서는 도덕, 실생활 정도로 치환 가능하다. 최종적으로 기르고자 하는 역량이 '문제가 생기면 민주적으로 해결해요, 합리적인 소비자가 됩시다'이기 때문이다. 실눈을 뜨고 고개를 쭉 뒤로 빼며 바람직한 사회의 겉모습을 보고 배우는 시간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속내까지 전달하면 수업이 더 알찰 수는 있지만 지금이 딱 수업을 흥미롭게 구성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만족한다. 다만, 수업을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게 흠이긴 하다.


 선생님들에게 새 학년도를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기껏해야 1주다(적어도 부산은 그렇다). 그 1주 안에 할 수 있는 건 교실 청소, 게시판 꾸미기, 자리 배치, 교육과정 부랴부랴 짜기 정도다. 교과 재구성(교육과정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 취향에 맞게 여러 교과를 섞어 가르치는 것. 단, 성취해야 하는 목표를 달성해야 함.)? 거의 매일 야근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사회 수업에 다양한 인생 게임이나 활동들로 민주적 의사소통 과정과 합리적 선택 과정을 경험시켜 주고 싶지만 준비할 게 너무 많다.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동학년 전체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하는데 작은 학교는 모두 일이 많다. 인디스쿨(초등 교사 공유 플랫폼)에 자료를 올리는 분들이 능력자로 불리는 이유가 있다. 간혹 재구성한 자료를 올려주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스타일이 안 맞으면 그것도 사용할 수 없다. 기실, 변명이다. 퇴근하고서라도 했어야 하는 거긴 한데 너무 양이 방대하다 보니 지레 포기한 거다. 불평불만은 그저 자기 방어의 한 형태였다. 실상은 '난 나쁜 선생님이야'하며 죄책감에 시달린다. 난, 나쁜 선생님이 맞다.


 변명이든 아니든 이건 선생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함부로 입을 놀렸다간 '방학이 있잖아'하며 퇴짜 맞기 쉽다. 나는 보통 웃으며 '맞아, 사실 방학 있으니까 뭐라 할 말은 없어'하고 만다. 그래도 힘든 날엔 씁쓸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속으로 경고 스티커를 하나 붙이며 '네가 애들 20명 넘게 같이 있어봐. 첫날에 속 터져 죽을 수도 있어'하며 폄하하기도 한다.


 맞다, 오늘 그냥 힘든 날이라서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위로받고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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