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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n 25. 2022

CLASSIC 고래밥

다음엔 하리보로 해야지

 "고래밥이 엄청 많네요?"

내일 수업 준비물을 챙기려고 고래밥 30개가 담긴 박스를 열었다. 옆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옆 반 선생님이 웬 거냐며 묻길래 수학 시간 준비물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고래밥 많이 쓰던데! 수업 재밌겠네요."

 굳이 길게 말하지 않아도 교사 사이에는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사고 과정이 있다. 고래밥, 거기엔 다양한 모양의 과자가 있다. 수학 5단원에선 여러 가지 비율 그래프를 배운다. 두 가지 사실을 가지고도 수업 아이디어가 퍼뜩 떠오르기 마련이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학 시간을 즐겁게 만들려고 갖은 애를 쓰는데 고래밥을 사용하는 날이면 걱정이 없다. 아이들이 즐겁게 참여할 것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1학기엔 고래밥이 2학기엔 홈런볼이 선봉에 서서 '수학은 어렵고 지루해'와 당당히 맞서 싸운다. 치열한 전투는 발산형 발문을 던지며 시작된다.

 "고래밥은 왜 고래로 이름을 지었을까?"

 언뜻 들으면 굉장히 철학적일 수 있으나 명쾌한 대답이 있다. '고래가 제일 많아서요'라는 발표를 기다리며 발문 몇 가지를 더 던진다. 다행히 미끼를 문 학생들이 뜨문뜨문 등장한다. 비장한 표정으로 진실을 함께 탐구해 보자며 B급 연기를 선보인다.


 활동은 최대한 자세하게 알려줄수록 시간이 단축된다. 시범을 보여는 게 가장 정확하다. 과자를 뜯어서 어디에 붓고 어떻게 세고 주의사항은 뭔지 보여주고 활동을 시작한다. 문제는 한 상자의 고래밥을 4명이서 나눌 때 발생한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아이들이 가장 불신하는 속담 Top 5에 들지 않을까. 분배된 양을 가지고 한참을 실랑이하다 결국 '가위 바위 보'로 정의를 실현한다. 마이클 샌델이 말하던 공정이 이것이 아니었던가. 잠시 조용해졌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3모둠에서 난리가 났고 내 심기를 건드리는 한 마디가 있었다.

 "아이 짜증 나. 왜 우리 모둠이 제일 양이 작아?"

 모둠 내에서 공평하게 분배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에 기성품 고래밥을 끌고 와 성질을 내는 게 못마땅했다. '아이 짜증 나'가 전매특허 말버릇인 동준이는 이미 비슷한 이유로 몇 번 상담을 받을 적이 있었다. 수업과 활동을 준비한 선생님들 앞에서 재미가 없다는 둥, 하기 싫다는 둥, 짜증이 난다는 둥. 네 감정은 존중하지만 듣는 사람의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바른 발화가 아니라고 가르쳤지만 반응이 시큰둥했다.


 이런 상황은 이제 심호흡도 필요 없다. 활동이 끝나고 점심을 먹기 전 동준이를 조용히 불렀다.

 "동준아, 이거 선생님이 사 온 거잖아 그렇지? 거저 받은 건데 양 가지고 불평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말을 내뱉고 나니 이어령 씨의 '마지막 수업'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지성의 끝은 영성이고, 세상 모든 나의 능력은 선물이었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 동준이의 불평까지도 사실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나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내게 경각심을 주는 점에서 동준이는 쓰지만 건강에는 좋은 교직 홍삼 같은 아이다. 유사한 아이들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인내하는 법을 배웠고 매 순간 감사하기로 다짐했지만 오늘도 선생님이라고 으스대는 꼴이 우습다. 거저 얻은 것이라 여기면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동준이에게 한 말이 나의 기분에 좌우된 말이었는지, 교육이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감정향이 가미된 혼합교육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 오늘도 부족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내일은 더 나은 선생님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동준 홍삼 한 포로 인내심 +10 했으니 동준이의 속마음을 더 잘 읽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다.


 실은 동준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선생님, 우리 모둠 애들이 저만 조금 줘서 화가 나요. 중재 좀 해주세요."

라두야, 나랑도 좀 놀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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