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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n 28. 2022

모래 얼룩이 남은 금요일

 비가 세차게 내린 지 2주 정도 됐을까. 추풍령에서 부산으로, 고속도로를 달리며 '아싸, 공짜 세차'했던 게 2주 전이었으니 아마 2주가 맞을 것이다. 장마가 곧 올 거라는 엄마의 말에 평일 내내 비가 쏟아지길 기다렸는데 드디어 오늘, 비가 내렸다.


 주말 동안 비가 와서 가물은 땅이 해갈하고 열기도 식혔으면 했지만 오후가 되니 먹구름이 살짝 끼면서 구름 사이로 비친 빛내림이 성스럽다. 못내 아쉬운 티를 내지 않은 건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맞춰 비가 멎었기 때문이다. 괜한 소리를 했다간 '저희가 비 맞기를 원하세요?'로 흘러갈 수도 있다. 아이들이 가고 난 뒤 교실에는 밥 냄새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섞여 잔존하고 있었다. 너희들도 이만 가라고 창문을 활짝 열어뒀는데 해가 떴다. 어느새 습기를 잔뜩 머금은 뜨거운 바람이 세어 들어왔다. 불청객을 내쫓으려 운동장 쪽 창문으로 나른하게 걸어갔다. 창가에 서니 모래 장난 흔적이 보였다.


 "사랑아, 생일 축하해."

 그리고 자기네들 이름으로 도배된 낙서였다. 우리 반 애들이었다.


 친구 생일을 거창하게 축하해주고픈 마음에  메시지를 썼겠지. 깔깔거리며 슬쩍 자기 이름도 휘갈겼을 선영이. 쓰고 나서 마음이  넉넉했는지 친구 이름을 하나씩 적었을 거야. 곁에서 지켜보던 다른 아이들도 후다닥 나뭇가지를 하나 주어와 자기 이름을 정성스레 그렸구나. 동떨어진 곳에 엉뚱한 모음 하나 있네. . 천진난만하다 해야 할지 혀를 내둘러야 할지.


 새삼 쓸모없는 것들을 공들여 남긴 수고가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의 발산으로 보였고, 그것마저 사랑스러웠다. 흘러넘쳐도 아름답다면 그건 사랑이다. 그 사랑에서 헤엄치느라 헐떡거리는 나는 얼마나 축복받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건지.


 나란히 위치한 이름들이 운동장을 채웠다. 위에서 내려다본 그 이름들은 학교를 다시금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가고 나면 학교는 맥없기 마련이나 곧 지워질 낙서가 금요일 오후에 짙은 모래 얼룩을 남겼다.

 "말라서 딱딱해졌을 때 툭툭 털면 되니까 손대지 말고, 어차피 버릴 옷 그냥 빗물에 빨아서 물들여도 되긴 돼. 귀한 거잖아,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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