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yu Jul 09. 2022

왜 하필 달리기야?

 100일부터였을까. 아니다. 분명 시작은 수학 시간이었다. 유독 무기력한 그 시간에 내기를 했다. 창의력을 요구하는 문제의 답을 맞히면 피구를 하겠다고. 제한 시간은 3분, 문제가 뭐였는지 답이 뭐였는지도 모르겠으나 아이들을 과소평가했다. 그날 아이들의 환호성이 교실을 가득 채우곤 잔뜩 흐트러진 의자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날과 D+100일 사이에도 여러 번 프러포즈가 있었다. 선생님이 최고고 제일 잘생겼고 마음씨가 곱다며 사탕 발린 말을 잔뜩 하곤 결론은 '그러니까 피구 하러 가요'가 돼버리는 그런 프러포즈였다. 적당히 놀려 먹다 수업을 이어나갔는데 우리가 만난 지 100일째 되던 날, 그러니까 3월 2일로부터 100일 되는 날이니 6월 9일부터는 뻔뻔함이 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101일이라서, 120일이라서 나가자고 보챘다. 나는 곧잘 날이 좋으니, 날이 흐리니, 날이 벌써 그렇게 됐으니 공부하기 딱 좋은 날이라고 완강하게 버텼다.


 방학이 이제 몇 주 남지 않았다. 다섯 달 남짓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는지. 그동안 게을리 가르치진 않아서 바쁘진 않았다. 전담이 하나도 없는 월요일 6교시가 나도, 학생들도 적당히 무력했다. 그러니까, 나도 나가고 싶었다는 말이다. 어김없이 나가자고 보채던 아이들에게 아주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니, 나가면 뭐 할 거야? 선생님은 준비한 게 없는데."

 "달리기 해요 달리기!"

 

 왜 하필 달리기인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을 하나 챙겨 따라나가겠으니 줄 서서 준비 운동하고 있으라는 말이 끝나자 아이들이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그 소리가 꼭 우다다는 아니고 계단을 두 칸 세 칸씩 뛰어내리다 보니 쾅쾅쿵 정도.


 엉성하게 줄을 서서 준비운동을 하는  마는 . 피구  사람은 민속놀이장에 가서 피구를 하고 달리기  사람은 여기 남아서 달리기 하자 했다. 매일 달리기 연습이라도 하는 걸까. 분명 팝스(체력 측정) 측정  50m  초가 걸리는지 들었을 텐데 유독 올해 여학생들이 달리기에 열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릴레이처럼 진행하기도 하고 개별로 달리게도 하니 헐떡이면서도 꺄르륵거렸다. 슬쩍 옆으로 가서  달리기가 하고 싶었냐고 물으니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재밌잖아요! 그게 멋져 보였다.


 나는 뭘 재밌게 하고 있을까. 찬양, 드럼, 글쓰기, 주짓수, 칭찬, 놀이, 디저트 먹기, 듣기, 말하기. 주짓수는 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하고 나면 뿌듯하지만 가방을 메고 문 밖으로 나가기 전까진 쉬어 보려고 발악을 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묻는다. 왜인지 이상한 이유를 잔뜩 붙이며 거창하게 보이려고 꾸며대긴 했는데 오늘부터는 간단하게 말하련다. 재밌어서 열심히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약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