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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l 13. 2022

초등학생들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부터 켜놓고 물을 떠놓는다. 우리 층 정수기는 연구실에서 꽤 멀어 물통에 담아두지 않으면 물 한 잔, 차 한 잔 하는 게 힘들다. 텀블러에 차를 우려서 교실로 돌아가면 컴퓨터가 켜져 있다. 자리에 앉아 비밀번호를 치면 눈을 땡그랗게 뜨고 주황색 부리를 가지고 있는 검은 펭귄이 작업 표시줄에서 주황빛으로 명멸한다. 교무부장님께서 보내신 아침 첫 메시지. 여러 가지 안내 사항들이 있지만 7월 초부터 꾸준히 보내지는 내용이 있다.

 '학기말 학생 생활지도 철저.'

 어근으로 끝나는 용건이 비장하기 짝이 없다. 그럴 만도 하다. 7월. 긴장의 끈을 쉽사리 놓치기 쉬우나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달이다.


 이제 방학까지 주말 포함 10일, 주말 제외 8일 남았다. 학교는 오늘을 제외하고 7번만 더 오면 된다. 교실에서 종종 다음 주가 방학이라며 들뜬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학생들도 보인다. 난 생각도 없었는데 계속 방학 숙제 내지 말아 달라는 학생도 있다. 내지 말라고 하면 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인지라 이거 저거 생각해 보지만 나의 방학을 되돌아보면 '열심히 노세요' 말고는 딱히 끌리는 과제가 없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7월 즈음되면 선생님도 늘어지기 마련이다. 그래, 올해는 잘해보자고 다짐했던 3월이 정말 엊그제인데 4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지치는지. 눈을 감아도 방학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그만큼 간절해질 때. 그날이 방학식이다.


 반면에 학생들은 달이 지날수록 힘을 얻는다. 늙은 마녀를 업고 가는 청년의 기운을 빨아먹고 점점 젊어지는 얘기가 떠오른다. 나를 청년에 학생들을 마녀에 대조시키지는 말아달라. 에너지의 이동 방향이 닮았다는 거지 인물에 비유한 건 아니다. 그들이 신나면 신날수록 수업이 활발해지고 쉬는 시간은 더 난장판이 되고 규칙들이 옅어진다.


 하루는 미술 활동을 위해 책상을 뒤로 밀자고 했는데 남학생 두 명이 뒤로 가다 말고 냅다 서로의 머리를 책으로 휘갈겼다. 박스에서 준비물을 꺼내려고 잠시 뒤돌아 있는 사이 아주 격한 다툼이 일어났고 반 학생들이 나를 애타게 부르지 않았다면 난 눈치도 없이 내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치과 진료를 위해 조퇴한 날에는 공교롭게도 실내화와 너무 비슷하게 생긴 여학생의 신발, 하얀 크록스  짝이 사라지는 사건이 있었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뒤로 나자빠질 뻔했던 이유는 의외의 인물이 범인이었기 때문이다. 본인과 친한 친구 외에는 말도 섞지 않는 남학생이 생전     섞었을 여학생의 신발을 숨겼는데 장난이 치고 싶었단다. 부들부들 떨며 눈도  마주치는 남학생은 그게 실내화라고 생각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잔뜩 벼르고 있었는데 아기 강아지처럼 바르르 거리는  안쓰럽고 미안해서 얼른 교실로 보내긴 했다.


 서로 편해져서 그런 건지 수업 중 개그 시도도 잦다. 문제는 눈치가 없다는 걸 본인은 모른다는 사실. 최근 들어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 그거다. 장난, 쳐도 좋으나 상대의 표정과 상황과 안전을 생각해야 한다는. 실수하면서 배워야 한다는 조언까지 잊지 않는다.


 학교 폭력 접수도 꼭 이맘때 일어났다. 6학년 몇몇 학생이 주도해 단체 카톡방에 5학년을 초대하곤 자기는 무섭지 않고 쟤는 욕을 많이 한다는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대화를 이어나가며 5학년을 두려움에 떨게 한 사건도 있었다. 다른 학교 학생 및 중학생들과 엮여 매일 나와 하교한 학생도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양오빠, 양언니의 색다른 의미를 듣게 됐는데 양오빠 한 명이 대뜸 전화를 해 쌍욕을 했던 일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더 이상의 남침이 없는 이유가 중2 때문이라는데 중학교 선생님들은 도대체 어떤 시련을 겪는 중이실까.


 올해는 1급 정교사 자격증 연수 수강으로 방학을 통으로 날리겠지만 여전히 내 방학은 작고 소중하다. 학부모님들은 가정에서 40일만 수고해 주시길. 얄밉게 들렸다면 그건 말이 얄미운 게 아니라 40일이 야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사도 남은 8일 동안, 그리고 학부모님들도 40일 동안 모두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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