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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l 20. 2022

부지불식간에

 학생들이 졸업하면서 나를 기억하지 못했으면 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행여나 상처를 줬다면 그 상처까지 다 잊었으면 하는 마음에. 6학년, 그냥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친구들이랑 재밌었지 하며 회상할 정도만 돼도 좋겠다고 바랐다. 개개인에게 애정을 쏟는 편도 아니다. 1년 뒤면 보내야 하는데 너무 친해져 버리면 내가 감당할 수 없다. 질질 짜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았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선생님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어쨌든 나는 보내야 하는 자리니까. 잘 키워서 잘 보내주는 게 목표여야 하니까.


 작년은 참 특별했다. 3월 한 달은 서로 삐걱거렸지만 이후는 척하면 척이었다. 절제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고 선을 지키는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훌륭하다는 게 아니다. 그런 아이들과 내가 잘 맞았을 뿐. 우린 정말 제대로 1년을 즐겼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고 행복했다. 물론 매일매일 한숨짓게 만드는 학생도 있었지만.


 어김없이 찾아오는 스승의 날은 어찌 된 영문인지 선생님들의 성적표처럼 변질된 게 아쉬웠다. 은사님들께 조금 죄송했던 게 여유가 있을 때 조금 더 자주 찾아 뵐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걱정도 잠시, 올해 스승의 날 성적표는 기대보다 높았다. 사실 작년에는 아무도 찾아오는 학생이 없었고 내가 너무 냉정했던가 반성도 했지만 내가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올해도 아무도 안 오겠거니 반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옆 반 남학생 한 명이 문을 두드렸다.

 "선생님, 이거 저희 형이 가져다 드려라고 해서요."

 생각해 보니 작년도, 올해 스승의 날에도 코로나 때문에 외부인 학교 출입이 불가능했다. 올해는 자신의 동생을 메신저로 삼아 커피를 배달하는 기지가 혹은 의지가 있었던 게 차이라면 차이일까. 그러고 중간고사 기간. 어떻게 들어왔는지 우르르 몰려온 학생들 무리에 우리 반 여학생도 끼어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음료 한 잔을 시켜줬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기말고사가 끝나고도 몇몇 남학생들이 찾아왔고 오늘은 또 방학식이라며 한 명이 복도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이 맛에 선생님 한다. 이런 맛이라도 없으면 일 년을 견디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당장 눈앞에 있는 학생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어 끙끙 앓고 고민하느라 행복이 줄줄 새는데 졸업생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에 마냥 힘이 난다. 찾아온 남학생이 작년에 자기들 어땠냐고 물어보길래 대답을 해주곤 나는 어땠냐고 되물었더니 한참을 고민하다,

 "급식 게임도 너무 재밌었고, 저희들이 한 실수들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주셨고, 한 명 한 명 단점보다는 전체의 장점을 잘 봐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개인의 의견에 불과하지만 비슷하게 느낀 학생이 많았으면 좋겠다.


 간혹 스승의 날에 학생들이 찾아오는 걸 피해 조퇴를 쓰는 선생님도 있었다. 사정을 들어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으나 교직 경력이 짧은 나의 경우 학생들이 찾아오면 아직은 반갑기만 하다. 막상 자리에 앉아 할 말이 없어서 했던 말 또 하는 꼴이지만 숨길 수 없는 입꼬리는 귀에 걸려 내려올 생각이 없다.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듣다 보면 머리가 지끈, 두통이 올 때도 있지만 오늘처럼 예고도 없이 와줘도 선물 받은 거처럼 기쁘다.


 학생 덕분에 웃고 학생 때문에 울고. 그 조그마한 것들이 내게로 와 어떤 의미가 된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또 한 번 반성해 본다. 작은 인연에서 놓치고 있는 게 있던가. 아무래도 답답하기만 한 작은 녀석이 있는데 조금 더 친절하게 말할 순 없었을까. 방학을 이틀 앞두고 미쳐 날뛰는 건 아무래도 나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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