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는 유튜브를 잘 보지 않는다. 퇴근길 지하철은 독서라는 루틴이 굳어진 지 오래다. 이어폰을 꽂고 아이패드 또는 종이책을 펼치다 보면 귀갓길은 금방이다.
오늘은 유튜브가 보고 싶었다. 피곤한 날엔 글보다는 영상이 확실히 눈과 귀가 편하다. 로봇처럼 매일 똑같은 습관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연히 상위 노출에 뜬 영상의 제목은 '인생을 완전히 다시 생각하게 될 영상'이었다. 최근 무기력증을 경험하고 마음이 힘들 때마다 봤던 영상들 때문이었는지 유튜브를 켜자마자 첫 번째 영상으로 올라왔다. 영상의 내용은 여타 자기 계발 영상들처럼 나에 대한 만족과, 주위 환경의 중요성 등 흔히들 아는 내용들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의외로 인상 깊었던 대목은 '목적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마지막만 요약하자면
믿지 않으시겠지만 저는 30살 때 Heart attack이 있었어요. 그리고 훌륭한 의사를 만났죠. 그는 차트를 보며 그는 말했어요. "이게 젊은이의 혈관이라는 게 믿기지 않네요." 나는 다시 되물었어요. "검사 결과에 이상이 있나요?" 의사는 다시 설명을 해주었어요.
"아이가 있나요?"
"네"
"딸인가요?"
"네"
"몇 살이죠?"
"아직 아기예요"
"딸의 결혼식장에 손잡고 들어가고 싶지 않나요?"
"뭔 소리예요, 검사 결과만 말씀하세요!"
"제 말 잘 들으세요. 지금 당신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다른 남자가 딸의 결혼식장에 손을 잡고 걸어갈 것입니다. 이해했나요?"
"네 이해했습니다."
"당신이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딸의 결혼식에 당신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진료실 이후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났고, 지난밤이 힘들었어도 계속해서 내 머릿속엔 "Bella's wedding day" "Bella's wedding day" "Bella's wedding day"가 맴돌았어요. 그렇게 당장 헬스장으로 갔죠. 저의 특정한 이유가 저를 행동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아니었다면 안 했을 겁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특정한 이유가 뭐죠?
영상은 이렇게 끝이 났다. 영상 속 주인공은 딸의 결혼식을 떠올리며 운동을 했고, 습관으로 굳혔다. 그렇게 건강한 신체를 유지했고, 영상을 찍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알리는 위치에 올랐다.
'구체적 목적의 중요성'이라는 포인트보다 와닿았던 건 의사의 멘트였다. 단순히 '관상 동맥이 막히면 죽을 수 있습니다, 운동하세요, 약 꾸준히 복용하세요'를 되풀이하는 진료가 아니었다. 환자와 질환 이외의 대화를 하며 환자에게 한 마디 말로 경각심을 일깨웠다. 그리고 누가 관리해주지 않아도 환자 스스로 관리하게끔 하였다. 이런 의사에게 필요한 덕목은 해박한 지식만 해당되진 않는다. "아이가 있나요?"라고 물어볼 수 있으려면 환자에 대한 애착과, 환자 가족에 대한 염려가 동반되어야 한다. 진료에 감정이 수반되었을 때, 영상 속 의사처럼 "딸의 결혼식"을 언급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최근 환자를 볼 때 부쩍 감정 이입이 줄었다. 환자가 안 좋아지거나, 사망을 하여도 일의 일부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의료계가 아닌 친구들과 대화하면 '사망 선고할 때 힘들어서 어떻게 하냐'라고 하지만, 정작 나는 괜찮았다.
2년 차가 되고 부쩍 사망선고를 하는 횟수가 늘어서 그런 걸까. 중환자실을 보는 2년 차 근무 초기에는 검사 결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했다. 환자의 바이탈이 흔들리면 거기에 내 기분도 출렁였다. 이전 글처럼 사망 선고를 동료에게 미루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결과들로 인해 한번, 두 번 환자들을 놓치고 나니 조금씩 감정 이입을 줄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또는 무의식적으로 감정 이입이 줄어들었다. 감정이 개입될 경우 업무 피로도가 높아지는 것도 원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원인은 한 명의 환자만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 명의 환자가 안 좋아질 때 내 기분까지 덩달아 안 좋아지면, 다른 환자들에게 차질이 생긴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하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하기만 한 나는 기분이 업무에 반영되었다. 그러다 보니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하지만, 그 이후의 결과에 대해선 조금씩 감정 이입을 줄여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뜻밖의 자기 계발 영상에서 최근의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덜어내고 있던 감정을 내일 출근부터는 조금씩 다시 채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업무에 매몰되어 환자를 일의 일부로만 대하는 의사가 되지 않길.
퇴근전 당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