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수련이 4년제에서 3년제로 바뀌면서 전공의 수련 시스템도 바뀌었다. 바뀐 시스템 덕분에(?) 작년에 돌았던 소아외과를 올해 또 돌게 되었다.
작년 소아외과 파트 끝나는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와이를 했던 파트여서 감사했던 기억도 있지만, 마지막 날이 좋았던 건 부담감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성인과 뭐 이렇게 다른 점이 많은지 주치의를 하는 한 달 내내 부담감이 어마어마했었다. 다시 안 올 거처럼 떠났지만 2년 차 때 또 오게 될 줄을 몰랐다. 심지어 1년 차도 배정이 안되어 역할은 1년 차 때 하던 업무+@였다.
지난번보다 더 신기한 경험이 많았던 한 달이었다.
신생아 기형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질환은 항문 기형이다. 타 기형 질환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수를 차지한다. 이런 아이들은 항문을 새로 만들어주거나, 넓혀주는 수술을 해야 한다. 한 명은 이전에 항문 수술을 했지만 직장이 좁아져 다시 수술하는 애기였다. 수술 전에 관장을 해야 했다. 하지만 좁아진 직장 때문에 관장을 아무리 해도 똥이 나오지 않았다.
수술 당일 아침까지 관장을 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그대로 수술방에 내려갔다. 수술방에서 마취를 한 후 복강경으로 뱃속을 들여다봤다. 직장과 대장에 똥이 가득했다. 복강경 기구로 대장을 눌렀더니 찰흙처럼 움푹움푹 들어갔다. 정상 대장은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교수님의 샤우팅이 이어졌다. 똥을 제대로 못 뺀 전공의 덕분에 그대로 복강경 기구를 철수했다.
마취한 상태로 관장이 이어졌다. 마취한 상태여서 애기는 배에 힘도 주지 않았고, 항문도 풀려있었다. 손가락으로 항문을 파며 배를 누르자 똥이 로켓처럼 발사되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 수술방은 똥냄새로 가득 찼고, 밖으로 퍼진 똥냄새에 한 명씩 20번 방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보고 돌아갔다. 교수님은 관장을 하며 기분이 좀 풀리셨는지 오랜만에 관장해본다며 멋쩍게 웃으셨다. 병동에서 하기 어려웠겠다고 한마디 덧붙여 주셔서 죄책감이 조금 덜어지기도 했다.
윗년차가 없었던 기간 탓에 교수님 외래도 같이 가야 했다. 맘 카페에서 유명하신 서 교수님 외래는 항상 정신없다. 2개의 방을 오가며 외래를 봤다. 똥꼬를 만들어준 서 교수님은 애기들에게 무서움의 대상이었다. 똥꼬를 한번 보자는 교수님과 바지춤을 붙잡는 애기들의 실랑이가 이어진다. 가끔은 애기들도 교수님의 샤우팅을 피해가진 못한다. "내가 너 똥꼬 한번 보면 안 되냐!!!"(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 대사가 떠올랐다.) 소리를 치셔도 그래도 애기들은 안 보여준다. 신생아 때 수술한 애기들이 커서 다시 외래를 오는 느낌이 이상했다. 왜 소아외과를 전공하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달 회식은 소아외과와 소아과 선생님들이 함께였다.
소아과 교수님의 건배사로 회식은 시작되었다.
"출산율이 7년 만에 절반으로 떨어졌다. 한 명 한 명의 생명이 너무나 중요하다. 신생아 중환자실과 소아 외과의 cooperation 이 너무나 중요한 이유다."
요즘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사실 소아과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하지만 소아과의 인기와는 상관없었다. 줄어드는 애기들의 수만큼 한 명 한 명을 살리는 것이 너무 중요하단 말씀은 오히려 소아과를 더 전공해야 하는 이유였다.
한 달 동안 가장 자주 뵌 서 교수님의 건배사가 이어졌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 글 쓰는 사람, 예술하는 사람, 정치하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 돈만 벌면서 안주하는 의사가 되지 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분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나도 세상을 바꾸려 노력했지만 잘 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너네는 바꿔라"
그 자리에서 말씀은 못 드렸지만 하고 싶은 말은 있었다. 교수님이 바꿔준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인생이 시간이 지나 세상을 바꿀 거라고, 결국엔 교수님도 세상을 바꾸고 계셨다고 마음속에서만 대답했다.
의학이 조금씩 더 좋아지고 직업의 가치를 다시금 떠올리기에 충분했던 회식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딴짓을 하고 있는 '나'에 대한 합리화도 충분히 할 수 있게 한 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