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직 시간 근처에 애매하게 연락 오는 응급실 콜들은 항상 어렵다. 당직 교대는 보통 8시에 한다. 하지만 퇴근 10분, 15분 전에 응급실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다. 일단 응급실 콜을 받으면 빨리 처리해도 30-40분은 소요된다. 환자를 파악하고, 직접 가서 보고, 교수님께 노티 후 플랜을 기록하다 보면 1시간은 훌쩍 지난다. 퇴근 10분 전 받은 응급실 콜로 인해 나의 당직은 1 시간이나 더 늘어날 수 있다. 이런 경우엔 애초에 퇴근 10분 전 콜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와, 다음 당직 선생님에게 일을 넘겨드려야 할지 엄청난 고민에 빠진다.
인턴 때를 떠올려보면, 내과 병동의 인턴 업무는 항상 많았다. 대게 급한 업무는 전화로 온다. 병동에 쌓여있는 인턴 업무는 급하지 않거나 몇 시간 이내로만 하면 되는 업무들이다. 내과를 같이 도는 인턴 동기들은 여러 명이었는데 각자가 담당하는 병동이 있었다. 하지만 유독 인턴 업무가 많은 병동은 11층 동병동이었다. 11동 인턴은 항상 뛰어다녀야 겨우 일과시간 내 업무가 끝난다. 그렇다고 해서 타 병동 인턴 업무가 적은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 11층 동병동을 지날 때면 병동에서 허덕이는 동기와, 아직도 쌓여있는 인턴 업무가 눈에 들어온다. 나의 피곤함에 ‘못 본 척할까’와 ‘잠깐 도와주고 갈까’ 사이에서 엄청난 고민을 할 때가 종종 있었다.
병원 일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렇게 선택의 갈림길에 놓일 때가 많다. 갈림길에 서있을 때마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을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기준이 될 때도 있었고, 그 당시 내가 얼마나 여유로운지가 기준이 될 때도 있었다. 각각의 경우마다 다른 기준들을 세우다 보니 항상 선택이 어려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나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나서는 선택이 더욱 명확하고 쉬웠다.
“마음이 힘든 것보다 몸이 힘든 것을 선택하기.”
생각해보면 귀찮아서 일을 넘기고 간 경우는 일찍 퇴근하더라도 마음이 불편하였다. 동기도 힘들겠지만 나도 힘들다고 모른 척 지나간 경우는 왠지 모르게 다음날 그 동기를 만나면 마음이 불편했다. 이런 불편한 마음들은 괜히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항상 '그때 그냥 내가 할 걸.'이란 후회를 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늦게 퇴근하고, 내 시간에 다른 동기를 도와주고 나면 몸은 피곤할지 몰라도 마음은 편하였다. 좋은 평이 따라오는 것은 덤이었다. 선후배, 동기들과 사이가 더 좋아졌고, 그럴수록 일의 피로도는 줄어들었다. 내가 할애한 시간 이상으로 도와주는 동기들도 있었고, 퇴근 시간을 먼저 챙겨주는 선배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값진 것은 내가 내 모습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것이다. 내가 한 선택에 대해 뿌듯함을 느끼는 건 그날 하루의 기분을 만들어주었다.
마음이 힘든 것보다 몸이 힘든 것을 선택하자는 가치관은 사소한 것에도 적용되었다. 무심코 흘린 작은 쓰레기조차 돌아가서 다시 줍게 되었고, 불편하더라도 때와 장소에 적절한 옷을 갖춰 입게 되었다.
인생은 어떻게 보면 선택의 연속이다. 작은 선택부터 중대한 결정까지 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그때마다 적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선택을 한다면 나중에 후회는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기준을 적용하는 대신,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지 생각해 본다면 조금은 더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크고 작은 현명한 선택들의 누적으로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삶을 끌어갈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