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풀 러닝
기록용 단거리라면 모를까. 오래 달리기는 피 맛 나는 것, 토할 것 같은 것, 꼴찌에 가까운 것.
딸아이의 방학을 맞아 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난 다음 날 이른 아침 창고살롱지기 혜영 님의 메시지가 왔다.
"현정님! 한국에서 선생님을 모셔와서 6월 xx일 이틀간 마인드풀 러닝이랑 운동할 예정인데 같이 할 수 있어요?"
"앗, 저 비행기 어제 예약했는데! 그날 한국가요ㅠ 근데 어.. 잠시만요!"
남편이 전날 저녁 티켓을 예약했고 당일 회사 담당 직원이 결제를 할 예정이었다. 근데 시간을 보니 8시 전, 출근 전이다. 결국 간발의 차로 한국행을 하루 미뤘고 마인드풀 러닝/SNPE/요가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with 합정 달리운동장 수지쌤, 하노이 하루더요가 다운쌤)
하지만 러닝을 하기로 한 당일 아침 우기에 접어든 하노이라 여지없이 부슬비가 내렸다. 단톡방에선 취소로 의견이 기우는 투표가 열렸고 나도 '아무래도 힘들겠지...' 하는 생각에 바르려던 선크림을 내려놓던 순간. 초 긍정파워 TG food Sue 사장님이 ‘우리가 준비운동을 하고 나면 비가 멈출 거예요! I will change my life!!' 라시며 이미 우비를 쓰고 출발하신 사진을 올리셨다. 실망과 망설임으로 차있던 화면이 갑자기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비 오는 아침 약 7명이 ‘어찌 됐던’ 달리겠다고 우비를 쓴 채 모였다. 시작 장소를 실내로 변경한 덕분에 달리기에 대한 개개인의 경험을 나누고 수지쌤께 마인드풀 러닝에 대한 소개도 듣고, 에어컨 나오는 쾌적한 환경에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나갈 때가 되자 내리던 비는 잦아들어 있었다!
본격적인 path에 접어들기 전 워밍업으로 자기 속도에 맞게 폴짝폴짝 조금씩 뛰었다. 근데 이제 겨우 한 30m 뛰었으려나. 메인 러닝을 시작하기도 전에 무릎아래가 뻐근해졌다. 아 저질체력. 멈추고 싶다. 종아리가 피로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시작했으니 참고 가보자!
실내에서 들었던 대로 입은 꾹 다물고, 코로만 숨 쉬며, 배에 힘은 주되, 어깨엔 힘을 빼고 천천히 뛰었다. 종종 수지쌤이 옆에서 함께 달리며 담담하고 묵직하게 지침을 알려주신다.
"속도 낼 필요 없어요. 걷는 속도로도 괜찮아요.
상체는 앞으로 살짝, 발 끌지 말고, 코로 숨 쉬며!
잘하고 있어요!"
재촉이나 무작위적인 구호가 아니라, 각 한 사람에게 각기 다른 언어와 문장으로 전해주시는 응원에 든든한 지지의 힘이 느껴졌다. 뛰다 보니 모래주머니를 단 듯 무겁게 느껴졌던 다리 아래쪽이 가벼워지는 듯했다. 신기했다. 어느 순간 부슬비가 아니라 폭우가 내려도 좋을 것 같단 생각까지도 들었다.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내린다면 그 어떤 것들이 다 씻겨 내려가 자유함을 만끽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우리가 뛴 게 20분이란다. 와, 몇 년 전 혼자 인터벌 러닝을 도전할 때 20초 뛰고 승모근 아파서 그냥 걸었던 나였는데, 자그마치 20분이라니! 거리나 속도는 중요치 않았다. 달리기에 대한 생각과 경험이 새로이 정립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로부터 일주일째 나는 한국에 머물고 있다. 어제는 종로 한복판 호텔에 묵으며 경복궁을 한 바퀴 돌았다 (아따 경복궁 참 넓데~) 오늘은 스콘 맛집까지 뛰어가 아침으로 먹을 빵들을 사 왔다. 작심삼일이 챌린지라면 진작에 성공한 것이다!
올빼미형인 내가. 아침 6:30에 호다닥 나갔다.
구두 신고 데이트하거나 유모차 끌던 거리를 운동복 입고 뛰었다.
오래 달리기라면 입 맛부터 떨어지던 내가 30분을 뛰었다.
굳이 안 하던 것을 하기 : 마인드풀 러닝.
달리기가 내 삶에 새로운 한 발자국 들어왔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내 자신이 정말 기특하다.
‘별것도 아니지만’ 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
정말 대단한 것을 해내고 있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