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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Jul 22. 2023

맨발의 현대인 : 우리의 양말은 참 두껍다

보호와 차단의 한 끗 차이

나는 말이야. 21세기 현대인이니까-

늘 신발을 신고 다니며 귀가 후 현관에 들어오면 또 곧장 실내화로 갈아 신는다지. 

서 있는 동안 하루의 대부분을 신발을 신은 채 생활한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뛸 때의 양말은 또 좀 더 두꺼워야 발이 보호될 것만 같아.


호텔 투숙시 이 신발에서 저 신발로 옮겨신는게 너어무 먼 듯 하여 남겨뒀던 사진


어릴 적 체육시간 달리기 기록을 재거나 운동회 때면 꼭 승부욕 넘치는 한 명이 운동화를 벗고 뛰었다. 

그것이 꼭 비법도 아니건만 어느 학년에서나 꼭 그런 아이가 있었다. 그러고 나면 괜히 또 승부욕 터지는 나를 비롯한 다른 몇몇의 아이들도 신발을 벗고 흰 양말로 뛰곤 했다. 왜 그랬나 몰라. 하지만 엄연히 말하자면 이 또한 진짜 맨발은 아니었고, 뛰고 나서 출발점으로 돌아올 때는 생각보다 지면의 충격이 강하게 전달받아 절뚝거리거나 발바닥이 아팠더랬다. 또 발가락 사이에서 느껴지던 포슬포슬? 한 모래먼지 느낌도 생생히 기억난다. 수돗가에서 꼭 발을 씻었어야 했고 하얀 양말은 여지없이 누레져서 세탁하는 엄마도 분명 얘는 도대체 오늘 뭘 한 거야? 하셨을 테다. 


성인이 된 후 맨발의 추억? 이따금씩 신발 속으로 들어간 돌을 빼내기 위해 한 발을 들고 신발을 뒤집어 들고 털다가 순간 중심을 잘 잡지 못해 아앗! 하고 발을 쿵 내딛을 때 정도나 꼽을 수 있을까. 그럼 여지없이 휴지로 발바닥을 닦았고 유쾌한 기분으로 맨발로 땅을 디뎌 본 적이 거의 없다. 


근데 서울숲에서 맨발로 달리기 혹은 걷기를 한다는 공지를 봤다. '네? 맨발이요?!' 굳이 안 하던 짓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2023년이긴 하지만 와 이런 식으로도 도전이 주어지나? 싶다. 심지어 달리기를 시작하며 멋진 러닝화도 샀는데 러닝화를 준비해오지 않아도 된다는 게 공지사항이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육상선수들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이다. 타고난 유전자가 따로 있겠거니 싶지만 유전자 외에도 환경적으로 그들은 어릴 때부터 매일 등하교로 10-20km의 흙바닥을 걷거나 뛰어다닌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던 그들과 케냐에서 함께 달리기 훈련을 했던 '마인드풀 러닝'  김성우 코치님과 '포포포 매거진' 의 주최로 서울숲에서 그런 행사가 열리게 된 것이다. (알고 보니 몇 년 전부터 늘 해오시던 듯한데 내가 처음 접한 것) 처음엔 이곳저곳 같이 참석할 사람을 찾다가 결국 동반자를 못 찾고 혼자 신청을 했다. 그리고 줌 강연도 들으며 읽었던 마인드풀 러닝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정리하며 기대하는 마음을 키웠다. 아이도 데려오시는 분들이 있다고 하셔서 뒤늦게 딸아이도 동반신청을 했다. 과연 수다쟁이 어린이와 'Mindful'이 될까 싶었지만 뭐든 첫 시도와 시작이 어려운 아이에게도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 같아 행사 바로 전날 뒤늦게 신청했다.


권유의 탈을 쓴 일방적 통보를 받은지라 아이는 내내 "맨발이라고? 으아 벌레가 많으면 어떡해. 뾰족한 걸 밟아서 피나면 어쩌지. 아아아아 엄마 하다가 양말 신어도 돼? 아 너무 걱정돼" 라며 볼일 보러 화장실에 들어간 사람을 쫓아오면서까지 계속 자기의 불안을 뿌려댔다. 내가 초대한 입장이기에 최대한 잘 달래야만 했다. "딸랑구! 많이 불안하지? 지금 이 감정을 꼭 기억해 둬. 그리고 내일 맨발로 걸어보고 나서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해 보자. 알았지?" 팔자눈썹을 하고 불안만 호소하던 아이 얼굴에 묘한 기대감이 덮이는 듯한 표정이 읽혔다.

   

당일 아침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과 간단한 소개를 하고 코치님이 러닝에 대한 이야길 해주시는데 참석한 8-10살 꼬맹이들은 역시나 가만히 들을 리가 없다. 요리조리 튀고 달리고 쪼그려 앉아 흙바닥에 뭐라 뭐라 끄적댄다. 하노이에서 이미 뵈었던 달리운동장 수지쌤도 계셨지만 낯선 이들과 인사하는 내내 뒤에 숨거나 내 옆에 내내 있던 딸랑구는 설명을 듣는 시간에 바닥에 세 글자를 썼다. <두/려/워> 그리고는 누가 볼세라 후다닥 지웠다. 나도 굳이 그 감정을 더 확대시켜주고 싶지 않아 그냥 못 본 척했다.


그리고 드디어 양말을 벗을 시간. '앗! 생각보다 따끔따끔하쟈낫!' 옛날 예능프로그램을 볼 때 지압판에 맨발로 올라서는 연예인들이 너무 엄살 부린다고 생각했는데 초반에는 내가 꼭 그 모양새 같았다. '오메 따끔한 거!! 우왓 우왓' 따끔함과 동시에 마음의 소리가 울린다. 신발을 벗어 둔 벤치 주변엔 대부분 풀들은 없고 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랑 도망치듯 흙밭을 벗어나 잔디밭으로 올라가고 살짝 젖어있는 풀들에 발을 스윽 스윽 비벼보았다. 



해가 구름 뒤로 숨은 날이라 꽤 시원한 풀들. 아침이라 촉촉하기도 하고 부드러운 풀도 있고 또 어떤 것은 까끌까끌하기도 하고 여러 감각이 기분 좋게 자극되었다. 아 신기해라!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냐. 내 옆자리만 지키던 아이는 자연스레 또래와 섞였다. 코치님이 2인씩 짝을 지어주고 작은 골프공으로 할 수 있는 여러 워밍업 동작을 했는데, 생판 모르던 사람과 마주 서서 하는 게 뻘쭘하기도 했지만 점점 몸뿐만 아니라 홀로 긴장했던 표정과 마음이 천천히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며 아이도 나도 맨발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고 자연 속에 맨 두발을 딛고 서서 그저 땅과 나, 두 유기체가 맞닿아 있는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약 15분간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자기만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로지 코 호흡에만 의존하며. 

약속한 공간 안에서 각자 일인이 홀로 또 같이 달린다. 동쪽으로 가면 다른 사람들과 동선이 덜 겹쳐 좋았고 서쪽으로 뛰면 신기하게 카모마일 향이 났다! 주변을 봐도 딱히 향이 나는 꽃이 눈에 띄지 않았는데 다른 곳을 갔다가 또 그곳으로 가면 또또또 꽃향기가 느껴져 킁킁 더욱 코호흡을 열심히 하며 에너지를 충전하며 달렸다. 맙소사 이건 마치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나는 꼬마 자동차 붕붕이 따로 없잖아.


마지막 1분을 남기고는 점점 코호흡이 힘들어지길래 천천히 걸었다. 굳이 오버할 것도 없이 내 페이스에 맞춰하는 달리기. 마인드풀 러닝의 참 좋은 지점이다. 워밍업을 하면서 몸을 풀어줬듯 달리기가 끝난 후에는 서서히 쿨다운을 하며 몸의 이곳저곳을 다시 편안히 풀어준다. 맨발로 코치님과 잡기놀이를 하며 신나게 놀았던 아이도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김성우 코치님 감사해요


물도 마시고 발도 닦고 어른들은 마저 못한 대화도 나누고 다양한 영상과 사진도 남기는 사이, 아이가 다시 쪼그려 신나게 뭐라 뭐라 바닥에 남겼다.


 

WOW!!!! It was s~~o fun ♡ 이라니!!

<두려워>가 <It was so fun>으로 변한 것이다.


솔직한 어린이의 너무 직관적이고 명확한 비포 앤 애프터. 직접 성장과 변화를 체득한 아이는 그것을 아이다운 방법대로 가감 없이 남겼고 이를 보고 공감한 코치님 비롯 어른들은 함께 감격했다. 아마 코치님이 전해주고 싶었던 것과 참가한 우리가 느낀 그것이 똑같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전시하듯 혹은 기록용으로 SNS에 남기는 어른의 것과는 참 순도와 농도가 달리 느껴졌다. 더구나 어른들이 사진촬영 및 공유의사를 묻자 아이는 더 뿌듯해했었다지. 나중에 코치님 인스타에 등장한 자기의 이야기를 보고는 더더 난리가 났더랬다. 



갑자기 무인도에 가져갈 3가지 물건 중 첫 번째를 양말로 골랐던 예전 나의 최애 연예인이 생각난다. 맨발로 절대 다니고 싶지 않다고 했던 그는 좀처럼 이 맛을 알기 힘들겠구나. 우연인지 필연인지 얼마 전 동네 산책길에서 맨발로 걷는 커플을 봤었다. 맨발 걷기가 이런 행사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듯 바로 내 앞에서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주변 근처 어디에도, 그들의 두 손에도 신발은 없었다. 어디서 나타난 도인들인지 요정인지 알길은 없지만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한 번의 체험으로 끝날테지. 장마가 끝나면 나도 도전해 봐야겠다. 어쩌면 맨발의 생활인(?)이 많은 하노이에 가서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분명 하노이의 문화충격 부분 첫 번째 항목이었던 게 맨발이었건만, 머지 않은 미래에 내가 그럴게 될지도...! 



https://brunch.co.kr/@h-jedidiah/14


마인드풀 러닝 김성우 코치 : instagram.com/sung.woo.ki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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