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레이스 Jun 21. 2024

선생님, 힘들 때는 우리에게 오세요.

베트남 다낭에서

대학을 갓 졸업하고 나는 곧바로 베트남 다낭으로 장기 해외 봉사를 떠났다. 내가 '한국어교육'으로 봉사활동을 한 곳은 다낭에 있는 대학교의 한국어학과였다.

먼 이국 땅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이리도 많은 학생들이 오다니, 실로 놀라웠다. 게다가 학생들의 한국어 수준은 이미 한국 드라마 등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배우고 들어와 기본 회화 수준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내가 봉사활동을 온 것인지 아니면  학생들이 나를 도우러 온 것인지 분별이 안될 만큼 학생들은 새로 온 어리바리한 선생님들 좋아해 주었고 무엇이든 도와주려 하였다.


처음 숙소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디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지, 은행에 개인 통장을 만들고 카드를 발급받고, 자전거를 사고, 그 밖의 등등 내가 외국 땅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들을 학생들은 서슴없이, 계산 없이, 그냥 우리 '선생님'이기에 나를 도와주었다.


지금도 한 명, 한 명, 떠오르는 너무 예쁜 학생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열정적으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지 못한 아쉬움은 늘 남아있다.


어느 날,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 수업은 끝나고 할 일없이 학교에 남아 한국 DVD를 보며 앉아 있는데 한 학생이 우연히 나를 발견하고는 말을 걸어왔다.


"선생님, 우리 집에 갈래요?"

집이라면 아마 다른 학생들과 함께 사는 자취방을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고 있는데, 학생이 나의 등을 떠밀다시피 하여 학교 근처의 그들의 자취방에 가게 되었다.


비가 계속 쏟아지는 우기의 자취방의 쾌쾌한 냄새가 났다. 방은 좁디좁았고 그 안에 우리 학과 아이들 세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멀뚱멀뚱 주위를 살피는 나를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았다.


"선생님, 외로울 때는 이곳에 오세요."


15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의 이 한 마디를 잊지 못한다. 먼 타국에서 아무도 나의 주위에 있지 않은 것처럼 외로움을 느낄 때, 나의 사랑스러운 친구들은 늘 내 문을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말해주었다.


"선생님, 외로울 때는 우리와 함께 해요!"


우리는 너무 외로운 시대를 살고 있기에 그 외로움에 익숙해져서 다른 이들에게 손 내미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두가 의도적으로,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나에게 다가오는 듯 하기에 모든 이들의 손을 뿌리치고 홀로 외로이 고독을 선택하는 것은 아닐까.


단순히 누군가가 '외로워 보이기에' 그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주는 그 마음을 나는 배울 수 있을까.


오늘 우리 아이들에게 나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외로울 때는 엄마 품으로 와!"  




이전 09화 나의 아빠의 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