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레이스 Jun 20. 2024

나의 아빠의 말

침묵도 하나의 언어이다. 

나의 아버지는 언제나 말이 없으시다. 

나의 어릴적 시절을 생각해 보면 아빠와 나눈 긴 대화는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아빠는 늘 가족과 함께 있으면서도 홀로 있는 듯 해 보였다. 

그러다가 이따금 술을 드시고 집에 오면 아빠는 어린 아이처럼 울며 나의 언니를 찾았다. 

맏이인 언니에게는 그래도 자신의 무너진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듯 언니에게 자신의 힘듦을 하소연 하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언니는 그런 아빠의 술 취한 모습을 너무나 싫어했다. 

그래서 늘 아빠가 술에 취해 오는 날이면 언니는 방문을 잠궜다. 

아빠는 토해내듯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고, 술취한 아빠의 모습을 싫어하는 엄마와  큰소리를 내며 싸울 때도 있었다. 


어쩌면 아빠는 꾹꾹 담아왔던 자신의 속내를 술을 통해서만 풀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가족들은 그런 아빠를 이해해주지 못했고 늘 침묵하는 아빠와 술에 취한 아빠를 번갈아 대하며 느끼는 이질감에 지쳐있었다. 


아빠는 여전히 늘 쓸쓸한 가장의 모습이다. 

우리 삼남매는 여전히 엄마와의 대화에는 어색함이 없지만 아빠와는 용기를 내어 전화를 해야 하고, 엄마를 통해 아빠에게 안부를 전하는 편을 더 편하게 느꼈다. 


아빠는 대화의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아빠의 부모님으로부터, 아빠의 가족들로부터 '화목함'보다는 '생존'이 먼저였던 가난한 어린시절이었기에, 살아가기 위해서 입술은 닫고 마음은 돌볼 새 없이 열심히 삶을 살아내야했던 아빠는, 침묵이라는 언어로 자신의 쓸쓸함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침묵의 세월을 살아간지 70년, 아빠에게는 이제 얼마의 시간이 더 남았을까. 

나는 그 남은 시간 동안이라도 아빠에게  언어가 가진 따뜻한 힘을 전달 할 수 있을까. 

아직은 자신이 없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모든 일이 끝난 뒤 후회하는 그 시간보다, 

자신없는 이 일을 부지런히 행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전 08화 남편의 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