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곳 하나 없던 나였는데, 요즘 들어 몸이 한두 군데씩 고장 나 말썽이다. 옛말에 잔병치레를 많이 하면 도리어 건강한 이들보다 오래 산다고 했는데, 나 오래 살려나. 예전에는 고작해야 환절기마다 찾아오던 비염으로 이비인후과 가는 게 다였는데, 요즘은 계절에 상관없이 아주 느닷없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골고루 아파서 내과로 정형외과로 산부인과로 투어 아닌 투어 중이다.
다 처음 겪는 질환이다 보니 아플 때마다 “죽을병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대로 된 검사는 하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내 몸무게는 상향곡선을 향해서만 치닫지, 하향곡선을 향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걱정과 시름이 좀 덜 하다. 골골대는 것 치고 식욕도 좋다. 아프더라도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살기 위한 본능으로.
올 초에 요가를 하다 허리를 다쳤다. 엉덩이에서부터 발끝까지 저림 현상을 겪었다. 디스크 초기 증상이라고 했다. 소염제 2주분을 처방 받았고, 다행히 별다른 물리치료나 추가 처방 없이 증상을 완화시켰다. 요가를 멈추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다.
몇 해 전 자궁근종 수술을 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누군가 콕-콕-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재발하지 않았을까’ 하는 근심덩어리를 가득 않고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도 내 자궁은 혹 하나 없이 깨끗했다. 수술 후에 오는 어쩔 수 없는 배란통이라고 했다. 약을 먹어야 통증이 사라진다고 했지만, 약을 먹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진단을 받고 나온 후 곧장 술을 마시러 갔다.
20살부터 술에 곯아 살았지만 위염 식도염 한번 걸린 적 없었다. 뭘 잘못 먹었는지 위염 식도염 콜라보로 그 좋아하는 술도 못 마시고 모닝커피도 못한다. 이주 째 위염 식도염을 달고 산다.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니 짜증은 나지만, 뱃살이 꽤 들어갔다.
얼떨결에 미루고 미루었던 직장인 건강검진을 받았다. 혈압은 좋다고 했고, 심장과 폐도 깨끗하다고 했다. 2주 뒤에 어떤 결과가 나를 마주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찾은 내과에는 환자들이 많았다. 두통으로 온 사람, 관절염으로 온 사람, 감기로 온 사람, 백신을 맞으러 온 사람. 각기 다른 이유로 병원을 찾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무표정했고 무미건조했다. 병원에 즐거운 일로 올 리 만무하다만 어느 누구 하나 얼굴빛이 밝은 사람이 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겠지. 병원에는 특히 어르신들이 많았다. 그들은 휠체어를 타고 오거나, 걸음이 느릿느릿 했고, 간호사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문진표를 작성하는 일도 어려워했다. 그들의 젊었던 시절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노화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늙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젊은 시절이 없었던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서글픈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아프니까 억울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할까. 맞다고도 할 수 있고 맞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이는 내게 ‘건강이상’을 조심하라고 매해 경고장을 보내오고 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나도 이제 건강을 챙겨야 할 나이가 된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용납할 수 없지만 용납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아진다.
소화기관은 왜인지 여전히 ‘빨간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