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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한마디가 계속 귀에 맴도는 경우

by kleo

여러모로 인상적인 말이었을 겁니다. 뜻밖의 위로가 되었거나 의도치 않게 상처가 된 경우도 있겠죠. 제 경우엔 주로 후자인 것 같아요. 분명 귀로 들은 말이지만 전자의 경우엔 마음으로 받아들이거든요. 그래서 귀에 계속 맴돌기보단 마음에 뜨끈한 온도로 맴돌아요. 반면 오감 중에 소리에 제일 예민한 제 귀에 계속 맴돈다는 건 확실히 제일 신경 쓰인다는 뜻이겠지요. 그런 말은 대체로 제 의지와 상관없이 일단 듣고 있어야 했던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몇 달 전 일인데요.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하고 이야기할 상황이 있었어요. 그분 역시 저를 처음 보는 자리였는데, 제 말 몇 마디로 금방 저를 판단하시더라고요. 심지어는 순수한 호기심이라며 묻는 질문들이 아주 뾰족하게 저를 찔러댔어요. 당장에 반박하고 싶은 말이었지만 기가 막히고 순간 화가 나서 제대로 대들지도 못했어요. 이후로 몇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저는 그분의 말이 귀를 괴롭혀요. 왜 더 대담하게 내 의견을 말하지 못했을까 후회스럽기도 하고요. 처음 본 사람이고 앞으로도 만날 사람 없을 사람이지만, 오히려 다시 볼 사람이 아니라서 그때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해줄 수가 없어서 더 낙담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귀는 왜 씻어버리지도 못하게 복잡하게 깊을까요? 눈이나 코나 입이나 손처럼 당장 씻어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다른 걸로 덮어버리고 금세 지워버리고 싶은데 말이에요. 생각하면 할수록 내 귀에 맴도는 소리를 내뱉은 그 사람들의 입, 어조, 음정까지 기억나버려요. 귀는 왜 아름다운 음악으로 얼룩을 지우려고 해도 그 틈을 비집고 나와서 다시 그 가시를 드러낼까요? 눈은 째려보면서 거부할 수 있고, 코는 찡그리며 불편한 티를 내고, 입은 다물면 그만, 손과 발은 무기가 될 수도 있는데도요.(물론 그래선 안되지만) 귀만 왜 듣기 싫은 말에 싫은 티도 못 내고 모든 소리를 일단 수용해야만 할까요? 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미리 필터링을 거쳐서 안 들을 수 있는 저항의 스위치 같은게 있으면 좋겠어요. 하필이면 또 그 말이 귀에 맴돌아 아리는 오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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