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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보면 멀미가 나요

by kleo

뚜렷한 취향이 없었어요. 세밀하게는 싫어할 이유가 없었던 거죠. 그런데 바다 앞에 살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좀 버겁다." 말 그대로 오션 뷰, 거실과 방의 창에서 바다가 보였어요. 그 정도면 누군가는 바다를 호령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바다를 내가 다 품고 있다는 착각까지 들게 하죠. 저는 바다에 갇힌 느낌이었어요. 망망대해에서 혼자 표류하는 기분. 심지어 날이 흐리면 바다와 수평선의 경계가 흐려지거든요. 그러면 '뿌옇게 내려앉은 안개는 언제 걷힐까?' 하면서 종일을 뿌연 상태로 숨어있었어요. 철썩이는 파도 소리는 마음을 더 요동치게 만들었어요. 바닷가 근처로 내려가면 풍겨오는 물 비린내도 울렁거렸어요. 드넓은 바다를 보면 속이 뻥 뚫린다는 엄마와 달리 저는 혼란스러웠어요. 모두를 안아줄 것 같은 모습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성나있고, 숨이 막힐 만큼 자주 잠기고, 금세 먹구름 떼가 몰려와서 짙은 얼굴을 할 것 같아서요. 우울은 수용성이라 우울감이 있을 때 수영을 하거나 샤워를 하면 도움이 된대요. 그런데 물가에 사는 건 다른 얘기 같아요. 내가 물을 적시는게 아니라 그냥 물에 둥둥 떠있으면서 손쓸 수 없는 기분이 들거든요. 하얀 캔버스에 푸른색 물감을 몇 번 휙휙 칠하고 배도, 등대도 띄우지 않은 그림 속에서 사는 것 같았어요. 도저히 이정표가 없는 막연한 기분. 그때부터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는 산이 좋았어요. 방향을 잃어도 다다를 수 있는 곳, 시작과 끝이 있는 곳. 결국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바다는 지나치게 모두를 감싸요.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처럼 느껴지게요. 끝내 그 길을 나섰던 혹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얼굴들을 계속 기억하고 있어요. 바다를 쳐다보고 있으면 삼켰던 기억이 다시 역류해 또 멀미가 나요. 나에게는 로망이 아니에요. 울고 싶은 건 난데 정작 펑펑 울고 있는 건 내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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