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는데 하물며 좋은 이름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제 아무리 뜻이 좋아도 부르기 어색하고 연상되는 이미지가 남들의 놀림감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면 결코 좋은 이름이 못 된다.
예를 들어 내 아내가 처음 '자야'라는 이름을 추천했을 때 나는 그래, 바로 그거야! 하고 무릎을 쳤다. 자야라면 일제강점기 최고의 시인 중 하나인 백석의 연인이 아닌가? 일명 나타샤! 자야의 실제 인물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한 때 서울 장안 최고의 요정이었던 대원각의 여주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대원각은 지금은 길상사라는 사찰로 바뀌었는데 자야에 대한 그의 불같은 사랑은 '나와 나타샤와 힌 당나귀'라는 아름다운 한 편의 시를 탄생시켰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 린다
나타샤를 사랑 은하고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힌당나귀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힌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자야라는 이름은 당나라 때 시인 이백의 악부시 자야오가에서 유래한 것이다. 장안 일편 월, 만 호도의 성... 하는 자야오가는 본래 육조 시대 진나라의 자야라는 여인이 부른 노래인데 이백이 이를 춘하추동 4 수로 개작한 것이라 한다. 『당서(唐書)』 「악지(樂志)」에 "'자야오가'는 진(晋) 나라의 노래로 자야라는 여인이 지어 불렀는데 그 노래가 몹시 구슬프다."라고 하였다.
가을밤 달은 밝은데 멀리 수자리 살러 나간 남편의 겨울옷을 짓는 아낙들의 다듬 잇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자야도 남편을 전쟁터로 보낸 여인 중 한 사람, 긴긴밤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원망, 미움이 다듬이 소리에 실려 허공에 울려 퍼지니 제 아무리 철석간장의 사내인들 눈물 흘리지 않을 자 어디 있으랴? 그래서인지 '자야' 하면 왠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퉁소 소리처럼 애절한 여인의 사랑이 떠오르는 것이다.
각설하고, 자야라는 이름이 거의 확정되어갈 무렵 문득 고양이의 성이 '고'씨가 아닐까 하는 내 물음에 '자야'라는 이름은 즉시 폐기 처분되고 말았다. '고자야!' 거 참, 어감이 난감하니 말이다.
롱은 우리 가족이 그렇게 만 이틀을 낑낑거리다가 얻은 이름이다. 고양이가 길게 허리를 펴며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은 것인데 어차피 국제화시대에 살면서 영어로도 뜻이 되고 한자와 우리말로도 뜻이 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길게 살 long, 허리 길쭉할 long, 재롱 잘 부릴 롱(弄), 눈 초롱초롱할 롱..... 아무쪼록 롱아, 롱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라! 201410 hyunhaed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