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에 고양이 사체를 보았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하루가 멀다고 목격하는 게 야생동물들의 사체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사고 현장의 잔상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있다. 녀석은 차들이 씽씽 달리는 고속도로 중앙분리대 안쪽에 쓰러져 있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거의 온전한 몸을 유지한 채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그의 사체 위로 아침 햇살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을 보고 나는 문득 심한 구토 증세를 느꼈다. 가능하면 빨리 그의 사체로부터 멀어져야겠다는 생각에 가속페달에 한껏 힘을 주면서도, 왠지 모르게 평화로워 보였던, 아니 평화로웠어야 마땅한 그 표정을 떠올리며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안식을 맛볼 수밖에 없는 녀석의 짧은 삶을 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퍼스트 캣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사람 아닌 고양이로, 더구나 길고양이로 이 땅에서 살아가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다행히 좋은 사람을 만나 10년 이상 장수를 누리는 고양이도 있지만 대부분 길고양이들은 평균 수명 3, 4년에 불과하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에게 쫓긴다. 인간을 피해 다녀야 하면서도 인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러니.
도시화, 산업화로 생태계는 철저히 붕괴되었고 그러다 보니 인간이 먹다 버린 음식물에 손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퉁퉁 몸이 불은 고양이들을 보고 잘 먹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고양이에게 해로운 염분 과다 섭취의 결과다. 은혜를 모르는 동물, 그들은 언젠가부터 주인을 해코지하고 배신하는 동물로 낙인찍혔다. 이 역시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로 인한 오해다. 또 유난히 독립성이 강한 본능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나날이 그 개채 수가 증가하는 것을 보면, 언젠가는 좋은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의 끈을 아주 놓아버린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은 지금도 어느 야산 우거진 가시덤불 속에서 썩은 고기로 허기를 달래며 아주 먼 옛날, 인간과 공존하며 살았던, 진실로 평화로웠던 시대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선 숙종 때 <금묘(金猫)>라는 고양이가 있었다. 황금빛 털을 가진 고양이라는 뜻의 금묘는 이른바 숙종 임금의 퍼스트 캣이었다. 그는 수많은 비빈들과 궁녀들을 제치고 숙종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으며 십 수년간 함께 밥 먹고 함께 잠잤다.
숙종이 죽자 곡기를 끊고 여러 날을 슬피 울다가 죽으니 혜 순대 비(惠順大妃)가 가상히 여겨 명릉(明陵) 근처 길가에 묻어주었다. 혜순대비는 숙종의 세 번째 왕비인 인원왕후(仁元王后)이고, 명릉은 곧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 경내에 있는 숙종의 왕릉이다.
이 금묘에 관한 이야기는 이하곤의 『두타초(頭陀草)』, 김시민의 『동포집(東圃集)』,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 등에 실려 있는데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금묘가 숙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숙종이 승하하자 죽음으로써 은혜를 갚은 보은의 동물로 묘사되고 있다.
이하곤의 두타초에는 이 이야기를 기록한 날짜가 '경자년 10월 25일 밤'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경자년은 서기 1720년이다. 참고로 숙종은 1720년 6월 8일 사망했다. 두타초에는 금묘를 금손(金孫)이라고 하였으며, 숙종이 금손의 어미 금덕(金德)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금손이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은 것이라고 했다. 김시민은 특별히 <금묘가>를 지어서 배은망덕한 인간들을 경계하고자 했다. 201706 hyunhaed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