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은 여전히 밉상이다
25년 10월 14일 아침 06시 35분
어제도 자전거를 타고 동네 탐험을 나섰다. 나에게 좌절을 준 험악한 오르막을 오르기 위해 완만한 경사로 시작하는 초장동 동사무소길을 선택했다. 드디어 험악한 오르막이 어디 올라와 봐라는 식으로 나를 노려보며 웃고 있는 듯했다. 그 위를 오르내리는 차량들만 봐도 경사가 아찔했다. 하지만 오늘은 기필코 등반에 성공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오르막을 올랐다. 역시 직선 단거리로 오르기는 무리라 판단해서 어제와 같은 S자 형태로 올라갔다. 마지막 급경사는 정말 쉽지 않았다. 또 허벅지에서 그만하라고 아우성이다. 이놈들아 니들 크기도 키워야 하는 게 목적이기도 하니까 조용히 해라. 난 이곳을 반드시 자전거를 타고 넘을 것이다 외치며 단단해지는 허벅지를 무시하며 계속 올랐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직선코스로 등반에 도전. 의자에서 거의 일어난 상태로 자전거를 타며 힘겨운 승리를 차지하기 위해 페달을 계속 밟았다. 그만두라는 마음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난 단 두 번만에 이 고개는 정복을 할 수 있었다. 거봐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두 번째 고개를 만났을 때는 과감하게 자전거에서 내려걸어 올라갔다. 아직은 아닌 거 같아서. 허벅지가 너무 무거워져서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었다. 너도 조금만 기다려라 내 조만간 더 단련해서 널 넘고 말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 탐험한 이야기 진행사항을 잠깐 소개해 드렸다. 다시 친구들을 소개하겠다. 과거 초등학교 친구를 소개하고 있었는데 많은 친구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아쉽게 기억 속에서 ‘펑’ 하면서 생각나는 친구가 없다. 에피소드가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닌데. 다음에 내 기억에서 갑자기 소환을 하면 지체 없이 소개를 하겠다.
오늘은 며칠 전 소개했던 M과 비슷한 대학친구를 소개하겠다. 비슷하다는 뉘앙스가 조금 이상한데, 이 친구는 나랑 동갑이긴 한데 내가 재수를 했기에, M과 같은 동기는 아니고 선배였다. 이 선배랑 친구가 되기까지 과정을 오늘 소개하겠다.
오늘 소개할 선배이자 친구는 K.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고 있다. K는 대기업을 다니며 출세(?) 했다고 봐야 하나. 출세한 게 맞지. K랑 첫 만남은 98년 신구 대면 식이었던 거 같다. 의례 하는 것처럼 어느 식당에 모여 신입생들 돌아가며 소개를 하고, 그다음 선배들이 소개하는, 소개라고 해 봐야, 이름, 출신고(지역), 나이(특히 재수이상 했다면 필수 항목)등 개인정보를 말하면서 소개할 때마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진행했다. 위에서 잠깐 M소개하며 잠시 얼굴을 비추었던 S의 자기소개시간에 K는 반응을 보였다. 신입생들이야 처음이고 하니 긴장을 하며 자기소개를 하는데, 선배들은 그와 달리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우리들 보다는 집중력이 흐려져 있었는데, 그때 K가 반응했다. “어, 우리 학굔 데, 그러면서 S의 얼굴을 자세히 봤고, 니 누구 친구 아냐?” 이런 상호 간에 피아식별이 진행되었고, 맞다면서, 너는 누구 친구 아니냐며 서로 확인 사살을 했다. 그 순간 개 부러웠다. 나도 아는 사람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 와서 생활을 해야 했기에, 지인이 생긴 동기를 보며 부러워했다. 그렇다 K와 S는 같은 학교 동기였고, S도 나처럼 재수를 해서 이곳에 입학했다. 난 S와 K가 굉장히 잘 지낼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곧 K는 군대입대를 했기에 우리와 학교생활을 거의 하지 않았고, 본격적인 생활은 우리 모두 전역을 한 다음부터 시작되었다.
난 몇 동기들과 조기 복학을 했는데, 먼저 제대한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나 조기 복학할 건데 같이 할 사람이 없는지 동반 복학생을 찾으러 다녔었다. 어찌해서 나중에 소개할 KK와 S, 그리고 나. 98학번 3 사람은 당당히 97학번 선배들이 복학해 있는 2001년 2학기에 복학을 했다. 복학을 하고 수업을 듣는데 조별 과제가 상당히 많았다. 당연히 우리 3명은 항시 같이 했고, 여기에 97학번 아웃사이더들이 추가로 조 편성에 참여하곤 했다. K는 당시 어울려 다니고 지금도 어울려 다니는 자칭 5인방(독수리였나?)끼리 조를 편성해서 모든 조별 과제를 하며 즐거운 학교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조별 과제를 발표할 때마다 우리에게 태클을 걸었고, 수업시간마다 시끄러웠으며, 그런데도 심지어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을 보며, 점점 뭘로 표현할 수 없는 극혐의 감정이 쌓이고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이때부터 나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그 5명의 이름을 올려놓고, 언제나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돌이켜 보면 나도 저들처럼 잘 놀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저들에게 끼고 싶은데 끼지 못한 아쉬움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던 거 같다. 아니 그랬다. 그래서 결국 학기말에는 나의 블랙리스트에 독수리들이 모두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K의 무리들은 인지를 하였고, 어느 날 K가 나를 찾아왔다. 그러면서 조만간 하리에서 우리 98학번 3인방과 K무리 5명이서 소주 한잔 하자고. 그 이후로 수업시간 발표 때마다 여전히 불꽃을 튀기며 아웅다웅했었지만, 학교생활은 예전보다 많은 윤활유가 작용해서 부드럽게 넘어갔다. K의 무리 중 R이 있었다. R은 아직도 기억에서 잊히질 않는다. 그 특유의 목소리 톤과 21살 치고는 좀 건방졌다 해야 할까?. 신입생 환영회 같은 자리가 열렸던 강의실에서 R을 돌아가며 신입생들과 인사를 했고, 나와도 그는 마주쳤다. 막걸리 잔을 들고 와서 따르며 서로 통성명을 했고, 나는 재수생임을 강조해서 R에게 어필했다. 친구가 될 수 있는지 눈빛을 보내며 타진하고 있었는데, R은 “대학교는 학번이 우선인 거 알지?” 이러면서 칼 같이 나의 눈빛을 차단했다. 나는 속으로 ‘뭐 이런 게 다 있어? 정시 입학이 벼슬이냐?’ 라며 마음속에서 외쳐 됐지만, 결국 입 밖으로는 “네, 네” 했다. 그 말 말고는 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마음에 사무쳐 K의 무리들을 더 유심히 봤을지 모른다. 저 건방진 놈이 거기에 있기에 더욱 나의 이목을 이끌었는지도.
K의 무리와 첫 회담을 하고 여러 가지가 나로서는 해결되었다. 매번 부르기 거북했던 선배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나의 블랙리스트는 폐기를 하며 그동안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쪼잔한 증표를 없앨 수 있었다. 그 후 K와 사이는 훨씬 돈독해졌고, 2학기말 02년 학생회 구성을 할 때, K는 회장님으로 나는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K와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만들어졌는데, 학교생활 때, 학교를 졸업했을 때 등 계속해서 수많은 이벤트를 만들었다.
K는 입담이 좋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K가 직업을 가질 때, 말을 하는 업을 가지면 그 누구보다 잘할 거라고 생각했고, 잘 못 빠지면 사기꾼이 되지 않을까 했다. 다행히 올바른 길로 접어들어 취업을 했고, 그 말빨을 여전히 잘 발휘하고 있다.
K를 만나면 항상 즐겁다. 그래서 K를 좋아했고,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본격적인 소개는 내일부터 해야겠다. 내일은 학교생활에서 에피소드 위주로 학과방에서 일어난 사건, K의 여자친구 하숙집 밑에서 일어난 일, 그리고 매월 14일마다 일어난 저주 등 할 말이 참 많은 친구다. 이런 재미났던 이야기를 내일 해 보겠다. 오늘도 모두 건승하기를 바라며. K에게 톡이나 보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