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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빛 Jul 20. 2024

투 폰, 학교와 선긋기.

경계 세우기

그동안 망설였다.

두 개의 핸드폰 쓰는 것을,

굳이 투 폰을 쓸 필요가 있을까 하면서 선뜻 내키지 않았다.

왠지 이중생활을 하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폰을 두 개나 들고 다니는 것이  거추장스럽게 여겨졌다.

가뜩이나 폰을 잘 잃어버리는 내가, 핸드폰을 두 개나 들고 다니면 분명 어딘가에 던져두고 올 게 뻔했다.

하지만,



투 폰, 학교와 선긋기.
그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투 폰은 어렵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알뜰폰 유심을 사서 굴러다니던 핸드폰에 넣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정말 너무 간단했다.

가격은 3000원.

곧, 나에게는 두 개의 번호가 생겼다.


이렇게 쉬운 일을 왜 그동안 하지 않았을까.


        대단한 용기였지만, 정말 사소한 일이었다.


                     진짜 별거 아니었다.


밤 열두 시에도, 새벽 한두 시에도 오던 아이들의 문자와 학부모의 전화에서
나는 나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내 삶도, 내 가족도 지키기 어려웠다.

늘, 항상, 언제나 제멋대로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서 나는 겁을 먹었다.

그게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정말 겁이 났다.

그들의 문자와 전화에서 나는 그때, 그때, 바로, 바로 응대해야 했다.  

언제부턴가 그들은 당당히 전화를 해도 되는 사람이 되었고 나는 그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시공간을 떠나서 그때, 그때, 바로, 바로 대응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는 더더욱 그랬다.


늘, 항상, 언제나 연락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전락된 나.
친절하게, 품위 있게, 본분을 지키며..

행여 부재중 전화가 와 있기라도 하면 나는 우리 반 주소록을 펼친다. 그다음엔 학교 비상연락망을 확인한다.

모르는 번호를 마주할 때마다 과연 누구일까,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불안했다.

나의 불안은 절대 근거 없는 불안이 아니었다.

그동안 오랜 경험으로 축적된 불안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반 아이가 누구와 싸운 것은 아닌지, 하교 후에 외부에서 안 좋은 사건에 연루된 것은 아닌지, 가정에서 또는 학원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부모조차 그렇게까지 걱정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꼼꼼히, 차근차근] 걱정했다.

그러면서 혹시 내가 놓친 것은 없었는지 되짚어 봤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나와 연관을 지으려 하면 관련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아무리 안전 지도를 해도 아이들은 복도에서, 교실에서 뛴다. 다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그게 큰 사고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수차례 이야기해도 그렇다. 말싸움에서 시작된 다툼도 돌연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폭력으로 번진다. 그런 일들은 대체로 말릴 틈도 없이 일어난다. 한 번은 말리다가 다쳐서 며칠 동안 물리치료를 다닌 적도 있다. 그러나 말릴 때도 아이의 신체 특히 성별이 다른 남학생의 경우 성추행으로 몰릴 수 있어 심히 유의해야 한다. [이것은 교직원 연수에서 어렵사리 모신 전직 선생님 노하우였다. 일타강사?로 열심히 여기저기 연수비 받고 특강 하러 다니시는 분의 대단한 조언이다. 그 전직 선생님은 무슨 큰 비밀을 알려주는 것처럼 우리에게 절대 아이의 신체를 잡지 말라하셨다. 그것을 듣던 관리자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말로 하라고. 대단히 우리를 위하는 것 같지만 결국 싸움이 일어나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말라는 거다. 선생님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싸움이 일어나면 동성 선생님을 찾아 불러야 하나. 그 동성선생님은 또 아이의 신체를 잡으면 아동학대가 되나?]


아이들은 학교에 올 때 자전거나 전동기를 타고 오다가 다치는 경우도 있고, 학업의 문제나 친구 문제로 힘들어서 학교를 안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다 학교와 관련되어 있다. 특히 체험학습을 가는 날은 모든 것이 학교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쌓기 위해 떠난 체험학습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고 앞에서는 우리는 그동안 모든 노력을 떠나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다. 그래서 나는 체험학습도 수학여행도 가고 싶지 않다. 위험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우리 선생님들은 매일매일, 항상, 언제나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게 되면 가장 먼저 화를 내고 분노를 표현할 대상이 바로 우리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들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난다. 인간이 아무리 통제하고 제어하려고 하지만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우리가 초인적 영웅이 될 필요도 없다. 부모 역시 신이 아니다. 그런데 부모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선생님의 책임으로 돌린 후, 그동안 뭐 했냐라고 책임을 묻는다면 이곳에 남아있는 선생님은 없다.]



오늘도 예쁜 아이들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봐주는 선생님들께서 이곳에 남기를 원한다면 선생님들을 지켜줘야 한다.

[더 이상 선량하고 따뜻한 선생님들이 악성 민원으로 모질게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교직을 떠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 현재를 상실한 내가 현재를 되찾고 싶어 학교와 선을 긋기로 했다. 그것은 나 스스로에 대한 경계 세우기이다.


엄마와 아이 사이에도 경계가 허물어지면 아이가 정서적인 위험에 빠진다고 했다.
부모가 경계를 허물어 버리게 되면 아이는 자유와 독립성이 훼손되어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선생님과의 경계를 너무 쉽게 허물어버린다.

우리에게 초인적 영웅을 기대하면서 끊임없이 요구하고 또 요구한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 경계를 세운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더 높게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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