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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빛 Jul 26. 2024

스승의 날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15일이 휴일과 겹쳐서 학교 출근 안 하는 날이었으면 좋겠어요.

아침부터 라디오에서는 '스승의 날'이라며 초등학교 은사님, 고3 선생님을 떠올리는 사연으로 훈훈했다. 그러다가 요즘 교권추락이 심각하다며 사뭇 심각한 멘트를 쏟아내더니 결국 '대한민국의 모든 선생님들 힘내세요.'라는 응원멘트로 마무리를 졌다.



오늘은 제일 학교 가기 싫은 날이다.
순위로 매기자면 수능 감독하러 가는 날보다 더 싫다.
특히  아침 조회 시간에 우리 반 교실에 들어가기 정말 싫다.



이런 날을 대체 누가 만들어서 이렇게 해마다 선생님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일까?

차라리 재량휴업일을 이 날로 정해서 모든 선생님이 마음 편히 휴업일을 보내는 편이 훨씬 낫다.


아니나 다를까 출근해서 메신저에 접속해 보니 이런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이번 스승의 날에는 학생자치회에서 선생님들께 상장과 카네이션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아이들에게 상장을 받는다니.. 나는 얼마나 민망할까.

카네이션이라니.. 안 받고 싶다. 김영란법에 카네이션은 괜찮나? 학생회에서 준비했다면 학교 예산으로 구입했다는 건가? 아무튼, 정말 안 받고 싶다.



'스승의 날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제발 재량휴업일을 스승의 날로 학사일정 계획하실 때 해주세요!'
'15일이 휴일과 겹쳐서 학교 출근 안 하는 날이었으면 좋겠어요!'


강력한 내면의 외침이었다.

선생님들이 마음 더 불편하게 만드는 이런 일회성 이벤트 제발 하지 말아 주세요.

저 카네이션 안 받고 싶어요. 저 아이들에게 상장받을 만큼 그런 훌륭한 교사 아니에요. 정말 너무 부끄럽다고요. 제발요.



아이들은 조회시간 종소리가 울려도 내가 교실에 나타나지 않자 직접 찾으러 왔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끌려 교실로 들어갔다. 땅만 보면서 걸어 들어갔다.

정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스승의 날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정말 너무 창피하고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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