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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빛 Aug 04. 2024

생기부만 아니면 당연히 안 하죠.

선생님, 저희 모두 생기부의 노예가 된 것 같아요.

"올해 우리 반을 위해 봉사할 친구들을 선출하는 임원선거가 다다음주 수요일에 있어요. 학급을 위해 임원으로 입후보할 친구들은 다짐과 공약을 양식에 맞게 써서 학급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 주세요. 그리고 학급선관위는 반장과 부반장을 어떤 절차와 방식으로 선출할지 구체적인 일정과 선출방법을 공지해 주세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아이가 손을 든다.

"선생님, 저는 반장은 부담스럽고 부반장만 나가도 되죠? 학종(학생부 종합전형)이 필요하기는 한데, 내신도 좀 챙겨야 해서요!"

"선생님, 반장 나갔던 아이가 떨어지면 부반장에 또 나갈 수 있어요?"

"선생님 학급 임원하면 내신 잘 받는 것보다 대학 가는데 좀 유리한가요? 아니면 반장 안 하고 내신을 좀 더 올리는 게 나아요?"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되물었다.

 

"00아, 넌 왜 학급임원을 하려고 하는 거니?"

"00아, 네가 생각할 땐 부반장이 반장보다 학급을 위해 덜 해도 되니까 한다는 거니? 그러면 임원은 왜 나오려고 하는 거야?"


"00아 너에게 임원은 대학 가기 위해 필요한 수단인 거니?"

"선생님, 당연히 대학 가기 위해 필요하니까 하는 거죠. 만약에 필요 없으면 굳이 안 하죠. 시간 뺏기고 힘든데 왜 해요. 생기부에 리더십이 필요하니까 하는 거죠."

"아, 생기부.... 그러면 너의 다짐과 공약은? 제가 나오는 이유는 생기부 리더십 때문입니다. 이렇게 입후보 이유를 밝힐 거니? 물론 우리 반 친구들이 판단은 알아서 하겠지만"


"다짐이나 공약은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은데요. 내신 올려야 하는 친구들은 어차피 임원 안 나올 거니까요. 수시에 리더십 필요한 애들이야 나오겠지만요. 저처럼 내신 좀 포기하더라도 학종 필요한 애들은 나오는 거고요. 애들도 다 알아요. 저희들은 생기부의 노예잖아요."



마치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식의 말투를 들으며 나는 어이가 없었다.

까놓고 얘기하면 모든 게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거침없는 말투였다. 솔직히 말하면 다 용서되는 면죄부를 부여받은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였다.


대단한 다짐이나 거창한 공약은 아니더라도 학급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는 선량한 마음을 지닌 아이들도 있을 텐데 그런 순수한 마음까지도 다 짓밞아버리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목적으로 입후보했었지만 막상 지나고 보니 자연스럽게 봉사심도 생기고 어떤 감화를 받아 자신도 모르게 성장하게 되는 아름다운 일화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말투였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진실되게 적을 수 있을까? 생기부는 과연 얼마큼 진실된 것일까?


'리더십 항목이 필요하여 학급임원에 출마한다는 소신 있는 모습을 보였으며 학업에 대한 의지와 열의 또한 포기할 수 없어 반장보다는 부반장에 출마해 학급을 위해 OO활동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 여겨 활동하게 됨.'


생기부의 노예여서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아이들의 억울한 마음과 생기부에 이런 일련의 과정을 상세히 적지 못하는 나의 마음이 교차되면서 나 역시 생기부를 아이들과 같은 목적으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다보니 스스로 너무 참담해졌다.




학교생활기록부. 그것은 대학교를 가기 위한 수단인가? 처음부터 그런 목적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무엇을 어떻게 [자~알] 기록할 수 있을까?


'처음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에 어색함을 느꼈으나 소그룹 독서 대화와 서평 쓰기 등을 통해 다양한 생각이 있다는 을 깨닫고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힘.'이라는 문장도 민원의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선생님, 저희 아이가 소극적인 것처럼 보여요. 이 문장 때문에 대학에서 저희 아이를 뭔가 부족한 아이로 생각하면 선생님께서 책임질 수 있어요?"


내가 적은 한 문장 때문에 아이가 대학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타당한 발언일까? 나의 문장, 나의 구절 하나가 대입의 당락을 결정할 만큼 그렇게 나의 기록은 영향력을 미칠까? 정말 그렇다면 그 한 구절, 한 문장으로 학생의 모든 삶을 재단해버리는 대학의 전형 방식은 문제가 있지 않은가? 대학은 얼마나 완벽한 인재를 원하고 추구하길래 그 한 구절, 한 문장으로 아이의 미래를 섣불리 결정하는 것일까?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삶이란 과연 가능한 것인가? 고1부터 일관된 진로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우리는 고1 때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이라고 단정 짓으며 확신에 찰 수 있을까? 아이가 대학에 떨어지면 그 원인이 나 때문일까? 만약에 그럴 수도 있다고 하면 나는 '그 만약 때문에' 그 문장을 기록할 수 없는 것인가? 나는 전문가인가 아닌가? 선생님보다 더 높은 학력 수준을 갖추고 있다고 자신의 학력과 직업을 당당히 내세우며 선생님을 은근슬쩍 무시하는 학부모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들의 무례함에 맞서 나도 당당히 이야기하면 선생님이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하며 비난을 듣겠지. 나는 무조건 선생님이기에 참고 견디고 인내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어야 할까? 나는 선생님이기전에 한 인간이고 아이들은 성장가능성이 무궁무진한데 말이다.  




생기부의 노예. 그건 어쩌면 나에게 더 적합한 말은 아닌가 싶다.

결국 진실은 다 소멸되고 아름답고 찬란한 단어들의 나열, 글짓기. 

내신도 중요하고 리더십도 필요하기 때문에 반장은 못하고 부반장 정도는 그래도 할 수 있다는 아이와

1학기는 내신이 중요하니까 1학기 반장은 안 하고 2학기 반장을 시킬 거라는 학부모.

생기부에 들어간 단어 하나 때문에 대학에서 불이익을 받으면 선생님이 책임질 거냐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나는 책임질 게 너무 많은 대한민국 교사다.
부모도 할 수 없는 일을 다해내라는 책임 많은 교사.  

아이가 다쳐도, 아이가 교우관계로 힘들어해도, 아이가 학업으로 힘들어해도, 아이가 체험학습을 가다 문제가 발생해도 다 선생님 탓이다.



아이가 친구관계에 어려움을 겪을 때 '부모님 그동안 친구관계 안 챙기고 뭐 하셨어요? 아이한테 관심은 있으셨나요?'라고 묻는가? 아이가 학업으로 어려워할 때 '부모님, 아이가 이렇게 기초학력이 안 잡혀있는 동안 뭐 하셨어요?'라고 묻는가? 아이와 외출하다 천재지변을 겪게 되거나 안전상의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님, 그러니까 아이를 잘 살피셨어야죠. 뭐 하셨어요?'라고 묻는가? 그 모든 원인을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부모에게 묻는가?


정말 마음이 아프셨겠어요.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대부분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대한민국 교사들은 아이들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가? 그리고 그 수만 가지 책임 중에 단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순식간에 무능한 교사, 무책임한 교사, 심지어 아동학대까지 휘말려야 하는가?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누군가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줘야 하지 않은가? 그게 어른이고 선생님이지 않을까? 그래야 이 아이들이 성장해서 어른이 되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지금도 초등학교 때 우리 담임선생님께서 적어주신 행동발달상황을 보면서 웃는다.

우리 선생님은 어쩌면 나를 이리도 정확하게 보셨을까.

그런 선생님의 예리한 관찰력과 있는 그대로 나를 담담하고 솔직하게 써주신 그 문장이 나는 참 좋다. 

 


오늘도 생기부 작성 연수를 듣는다.

'선생님들 이렇게 쓰시면 민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 아이들의 부족한 부분보다 긍정적인 부분을 위주로 서술해 주시고 부득이하게 쓰시더라도 이런 이런 점을 보완하면 발전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그리고 아이의 진로와 관련해서 일관되게....'


그래서 아이들의 생기부만 읽다 보면 한 아이에 관한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진다기보다는 어떤 아이인지 몰라도 참 아름답고 훌륭하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우리는 대학입시를 위한 전단계의 수단으로 교육을 하고 있는가?

우리 아이들은 대학진학을 위해 생기부에 도움이 되는가 안 되는 가를 판단기준으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가?



"생기부의 노예."

정말 씁쓸하고 서글퍼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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