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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빛 Aug 02. 2024

체험학습 가기 싫습니다.

수학여행은 더더욱 싫습니다.

가족과 여행을 떠났는데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뜻밖의 사고를 마주하게 된다면,
불가항력적 사고가 발생된다면,
그것은 부모의 책임인가요?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고에 아이가 다치거나 고열 등의 증상으로 감기인 줄 알았는데 위중한 상태까지 이르게 된다면 그것은 부모의 책임인가요?

안전사고에 대한 예방을 소홀히 했다고 부모가 기소되나요?


하지만 그러한 일들이 체험학습과 수학여행에서 일어난다면 왜 우리 선생님들은 기소되나요?

왜 부모에게도 물을 수 없는 일들을 우리 선생님들에게는 무한 책임을 지우나요?


저는 체험학습 가기 싫습니다.
수학여행은 더더욱 싫습니다.


안전사고 사전 예방 교육 몇 번이나 반복합니다.

담임이라서, 학년부장이라서, 학생부장이라서, 관리자라서, 또 담임이라서, 또 담임이라서, 또 담임이라서..  

가기 전부터, 가는 내내,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수시로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


얘들아,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야. 우리가 즐거운 여행이 되려면 무엇보다 서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해. 길을 건널 때는.. 차를 탈 때는.. 주변을 항상 살피고, 차례를 지키고, 신호를 잘 살피고, 뛰지 말고, 서로 장난치지 말고, 옆에 친구가 있는지 확인하고, 일정을 확인하고, 몇 시까지 모여야 하는지, 어디서 모여야 하는지, 화장실은 어디 있고, 절대 난간에 매달리거나 기대면 안 되고, 밀거나 하지 말고, 감자기 차가 나올 수도 있으니.....


몇 번이나 반복하고 몇 번이나 살피면서 체험학습을 갑니다. 수학여행을 갑니다.

서른 명이 넘는 반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내내 한숨도 제대로 잘 수 없고 가는 내내 불안과 긴장의 최고조 상태에 이르면서 살피고 또 살핍니다.


그래도 사고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신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들떠있고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친구들과 장난도 치고 서로 핸드폰으로 사진도 찍고 매 순간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고 딴짓도 합니다.


순간적으로 사고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신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도 언제나 저희 탓이지요. 결국엔 저희 탓입니다. 처음엔 아니었더라도 아이가 아프거나 다치게 되면 더더욱 쉽게 회복되지 않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면 더더욱 저희 탓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체험학습 가기 싫습니다.
수학여행은 더더욱 싫습니다.

좋은 추억이요? 학창 시절의 낭만이요? 그 추억, 그 낭만 지키려고 교사가 감당해야 할 몫은 얼마나 큰가요?

부모도 책임질 수 없는 것을 교사에게는 책임지라고 강요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입니다.      


왜 선생님들은 원하지 않는 체험학습과 수학여행을 가면서 안전사고에 대한 무한 책임지고 기소되는 상황까지 처해야 합니까?


그래서 저는 체험학습을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돌발적인 변수까지 제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저는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차라리 제가 신이 되어 아름다운 추억과 낭만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이 아닙니다.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을 기차와 버스, 도보로 2박 3일 동안 인솔하면서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무한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에게도 선택권을 주십시오.


가고 안 가고 아이들에게는 선택권을 주면서 저희는 왜 2박 3일 또는 3박 4일의 시간 동안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이 오롯이 책임과 의무만 강요되는 체험학습을 가야 합니까?


아이들의 추억을 위해 짊어져야 하는 나의 무게가 너무 무겁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교사가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고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만에 하나 일어날 안전사고로 인해 평생 죄책감과 자책에 시달리면서 무능하고 무책임한 교사가 되느니,

하루하루 조마조마하며 긴장과 불안 상태에 놓여 있느니

저는 그러는 편이 낫겠습니다.


월급 받으면서, 공무원이면서 하라면 다 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힘들면 때려치우면 된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지요?


저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직에 들어왔는데 왜 이런 통제할 수 없는 범위의 돌발 사고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왜 이 모든 것을 홀로 오롯이 다 감수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안전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 교육의 전반적인 문제이지 개인이 감당해야 할 책임은 아니지 않습니까?

왜 제대로 된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고 우리 선생님들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려 하십니까?


상식적인 범위 안에서 가능한 일을 하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왜 저희의 희생을 숭고한 가치인 양 포장하면서 저희를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 하십니까?


왜 저를 지극히 높은 가치를 지닌 성스러운 존재인양 높이면서 무한 책임과 자기희생을 강요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인간다운 삶의 최소한의 기본 조건은 누가 지켜줍니까?


많은 선생님들이 교직에서 겪는 어려움으로 유명을 달리하고 계시는데 과연 저희를 지켜주는 사람은 누굽니까? 관리자가 지켜줍니까? 교육부가 지켜줍니까? 저희에게는 왜 중대재해처벌법이 없나요?


선생님의 인권을 지켜줄 든든한 변호사 한 명 없고 안전사고를 막아줄 시스템 하나 체계적으로 구축하지 않으면서 선생님에게 체험학습 가라, 수학여행 가라 지원금 보내지 마십시오.


완벽한 안전사고 방지 시스템을 교육청에서 만든 후에 그다음에 아이들의 추억과 낭만도 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한 사람에 짊어 지우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안전 사고 예방에 대한 시스템 개선 없이 아이들 체험학습 보내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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