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기

함께 하는 길

by 하우

지난가을, 아이들과 주말마다 등산을 다녔다. 예년같으면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불 만한데 가을치고 포근한 날씨가 11월까지 지속되고 있었다. 집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도봉산 입구에서 내렸다. 결혼 전부터 큰애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까지 부모님이나 남편과 자주 다니던 곳이었다.

박동을 느끼며 턱 끝까지 차오는 숨과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젖은 머리칼을 간지럽히던 바람이 내심 그리웠다. 이제 아이들도 같이 다닐 만한 나이가 되어 등산의 맛을 알게 되겠구나 생각하니 설렜다.


등산로 입구에 이르자 다채로운 옷차림이지만 비슷한 표정의 등산객들이 활기를 내뿜고 있었다. 남매들은 재잘대며 길가 매대에 진열된 등산용품과 길과 경계 없이 열린 식당 앞에 쌓아 올린 음식들을 두리번거렸다. 아침을 먹고 나왔는데도 노점에서 어묵꼬치를 몇 개씩 해치우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일주일 전와 마찬가지로 무리하지 말고 적당한 지점에서 하산하자고 남편과 말을 맞췄다. 대신 지난번과 다른 길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초입은 평지에 가까워 산책하는 기분으로 쉬엄쉬엄 산을 올랐다. 우리처럼 가족 단위 등산객이 많았고 외국인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이상 기후 때문에 이번 가을은 별로라더니 맑은 하늘을 등지고 마지막 붉은색을 뽐내는 단풍에 걸음을 늦추지 않을 수 없었다. 매년 보는 단풍이지만 같지 않았다. 곧 지나갈 모습이라는 생각에 보고만 지나치기 아쉬웠다. 다른 사람들처럼 아이들을 길가에 세우고 가장 예쁜 이 순간의 아이들과 가을을 앵글에 담았다.

활동적인 아이들이라 걱정은 안 했지만 날다람쥐가 따로 없었다. 오르다 보니 길이 급하게 가팔라져 바위를 손으로 잡고 발을 디뎌야 하는 아슬한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아이들 발만 보며 걸음을 옮기는데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대견했다. 특히 외출하면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프다고 투덜대는 둘째는 몸이 가벼워서인지 뛰다시피 산을 올랐다.

어느새 마당바위에 이르렀다. 어느 곳에 서도 시야가 확 트인 곳이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포토존을 찾아 움직였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배낭에서 김밥을 꺼내 나눠 먹었다. 남매는 산에 오기를 잘했다며 상기된 얼굴에 양볼 가득 김밥을 물고 다음에 또,를 외쳤다.


오르던 길이 돌이 많고 경사가 심해 하산은 좀 돌아가더라도 다른 길로 가기로 했다. 다져진 흙길을 지나니 그늘진 곳에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이 이어졌다. 낙엽 아래 바닥이 어느 정도일까 가늠이 되지 않았다. 산에 오니 누나보다도 몸이 빨라진 둘째가 앞장섰는데 잘 내려가나 싶다 낙엽을 밟고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자리를 바꿔 내가 앞에 섰다.

엄마가 가는 길로 따라와.

흙 사이로 드러나 맨질해진 나무뿌리를 밟고 내려오는데 뒤에서 또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은 찡얼거리며 불만이 가득한 말을 내뱉었다.

아들을 다독이며 엉덩이를 털어주었다. 얼굴을 찌푸리며 남편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너무 미끄러운 신발을 신겼나 봐.

나무둥치에서 앉아 쉬던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이쪽 길이 내려오기 편한데 엄마가 그쪽 길로 갔네.
앞만 보지 말고 멀리 보고 가야지.

과연 아주머니 편을 보니 반달 모양으로 휘어진 길이 완만하고 낙엽이 별로 없었다. 내려오는 길마다 갈림길이 있었는데 빠르게 내려올 수 있는 곳으로 발을 디뎠던 것이다. 남편을 제일 앞에서 내려가게 하고 아이들 뒤를 따랐다. 내려오는 내내 아주머니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행여 미끄러질까 고개를 숙이고 신중하게 발을 디뎌 나갔다. 아이를 키우며 가졌던 신념과 확신, 믿음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리속을 지나가며 작은 균열을 만들었다.

역시 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