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우 Nov 27. 2022

거미

내게 와 줘서 고마워


 “저 거미는 비가 와야 떨어지는 거야?”   

  

  아침에 눈 비비며 나오는 딸이 투덜댄다.

  일어나자마자 웬 거미 타령인가 싶다가 어제 아침에도 딸이 지 아빠랑 거미가 어쩌고 하던 것을 들은 기억이 났다. 밥주걱을 내려놓고 가봤다. 작은 거미가 딸의 방 창문 방충망 위쪽에 매달려 있었다.


 순간 백석의 시 하나가 떠올랐다.      



                                    수라

                                                                           백석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 젠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 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 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일제 강점기라는 혼란한 현실을 수라에 비유하고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거미 가족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시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 외울 정도로 수업 시간에 낭독했지만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해졌는지 새끼 거미와 엄마 거미에게까지 감정을 이입하고 눈물을 글썽였다.




  이 시점에 절묘하게도 이 시를 떠올려 딸에게 추천하다니 전직 국어 강사인 엄마로서의 쓸모에 어깨가 으쓱했다. 후다닥 검색해서 제일 처음 나온 페이지를 들이밀며 이 시를 볼 때마다 엄마는 마음이 아렸다고 말해줬다. 이제 4학년이고 책도 좋아하는 편이니 이 정도는 이해할 만한 수준이라 생각했다.

  딸은 가만히 보더니


  “우와! 으악!!!”


  소리를 연발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시 소개 위에 블로그 주인이 자신의 농장에서 촬영한 거미 사진과 동영상을 올려놓았는데 그것을 보고 그러는 듯했다.



  그럼 그렇지. 딸이 만약에 ‘엄마 너무 슬픈 시야’라는 반응을 보였으면 얘가 왜 이러나 싶었을 것이다.  딸이 내 소울메이트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딸은 내 배에서 나온 게 맞나 싶게 엉뚱한 면이 많아 가끔 나를 당황시켰다.



  딸이 유치원 다닐 때 끝날 무렵 데리러 간 적이 있다. 앞머리 중 절반이 중간에서 잘린 채 입구에 나와 서 있는 딸을 보고 기겁했다. 선생님은 민망한 웃음을 머금고 가위가 얼마나 잘 드는지 궁금해 그랬다고 하더라는 말을 전했다. 아이니까 궁금할 수 있다. 그런데 하필 가족사진 찍기 전날 가위 날의 절삭력을 시험해 봐야 하는 거니. 혹시나 싶어 며칠만 얌전히 지내자고 했던 나의 신신당부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도서관에 다녀오던 어느 날이었다. 볕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아이도 기분이 좋은지 집에 오는 10여 분간 내내 운전하는 뒷자리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도착해서 돌아보니 흡사 멜론만 한 실뭉치가 공처럼 뭉쳐져 딸의 손 위에 소복이 담겨 있었다. 책 모서리에 뜯겨 원피스의 실밥이 삐죽 나왔나 본데 딸이 집에 오는 동안 열심히 당겨 풀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부터 치마 밑단까지 얼마나 살뜰히 실을 빼냈는지 구입한 지 며칠 안 된 딸의 옷은 시스루 원피스가 되어 있었다.




  딸에게 이 세상은 모험과 신비의 세계라 재미있는 것 투성이었다. 반면에 늘 선택지에 없는 행동을 하는 아이 때문에 엄마가 처음인 나는 어쩔 줄 몰랐다. 호기심 가득한 반짝이는 눈빛은 나를 불안하게 할 때가 많았다. 위험하다고 말려도 소용없었다. 기어코 직접 만지고 경험해 봐야 했다.




  제일 곤란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였다. 딸을 친정에 맡기고 둘째를 낳고 조리원에 있을 때 며칠에 한 번씩 난감한 목소리의 유치원 담임 선생님의 전화를 받을 때는 몸이 달아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세상에 이렇게 미안할 일이 많은지 몰랐다.




  일의 계획 단계에서부터 여러 가지 예상 결과와 변수까지 고려하는, 돌다리를 마르고 닳도록 두드리는 나는 그 자유로움이 신기하고 부럽기도 했다. 왜 저런 생각을 하지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냐는 감탄으로 바뀌고 있다. 딸의 반응이나 행동이 궁금할 때도 있다.




  나와 다른 아이를 보며 내 안의 틀을 새삼 발견했다. 그 안에 아이도 나도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다. 내가 품어 세상에 나왔지만 너와 나는 다른 사람. 그래서 더 빛난다는 것도 고맙고 다행한 일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이전 15화 너에게 건네고 싶은 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