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놓아 울 수 있어야

by 영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벼락같은 이별 앞에 목 놓아 울 수 있어야 나머지 생을 비틀리지 않고 살 수 있어요. 슬픔을 슬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슬픔에 대처하는 법입니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살면서 한번은 반드시 직면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 삶의 진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남아 있는 사람에게 그만큼 압도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울고 있는 내 곁에 이제 그만하라고 재촉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산 사람은 살아야지, 남은 가족을 생각해야지 같은 어쭙잖은 조언 대신 내 눈물이 마를 때까지, 떠난 사람에 대해 더는 할 이야기가 없을 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을 때까지 내 곁에서 산처럼 묵묵하고 바다처럼 먹먹하게 버텨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울고 싶을 때는 마음껏 울 수 있고 웃고 싶을 때 마음껏 웃을 수 있도록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가장 빠르고 단단하게 슬픔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치유자가 아니라 이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치유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옆에 있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진짜 사회안전망입니다.


-정혜신, <애도연습> 창비 2024, 24-25쪽.




‘산처럼 묵묵하고 바다처럼 먹먹하게 버텨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사회안전망’이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 사람들이 되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지속 가능성 이전에 인류의 지속 이유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의 인류. 자본의 힘으로 그런 인류를 만들 수 있는가. 그런 인류를 만들 권력들이 존재하는가.


자본이나 권력의 힘과 상관없이 그런 사람이 되려는 자기들에 의해 그런 인류가 형성될 가능성도 커 보인다.


자기만 그런 사람이 되면 되니까 말이다. 그런 사람이 되려는 자기들에 의해 그런 인류가 되어 온 측면도 있지 않은가.



2025.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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