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by 영진

“’강한 사람‘은 자신에게 정직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자신과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경험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도 강한 사람을 지향한다. 그렇게 강한 사람이 되어 갈 것이다”


아래 글 <강한 사람>의 마지막 문장들이다.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마지막 문단에도 ’경험했다‘는 표현이 등장하듯이 ’경험체‘(?)로 쓰인 글이다. 내가 글에 쓰인 것과 같은 ’강한 사람‘을 경험했다는 것이지 내가 강한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 두 문장처럼 글 속의 ’강한 사람‘, ’자기 통제‘와 ’자기 정직‘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해서 그런 ’강한 사람‘을 지향하는 것은 맞지만 그런 사람이 되어 갈 것이라고 썼지만 정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뭔가를 강하게 지향하거나 되려고 하는 사람은 아니다.


지속적으로 서서히 타원을 그리듯 지향한 바를 향해 나아가는 편이다. 누가 보면 저래가지고 목표한 바를 이루겠나 싶을 정도로 뭔가를 치열하게 끈질기게 하는 편이 못되는 사람이다. 자기통제도 잘 안되는 편이다. 좀 충동적인 면도 있고 의도해서 뭔가를 하다가도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란 사람은 ’강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래서 글과 같은 강한 사람을 지향하는 것도 맞고 그렇게 되어 가려는 것도 맞다. 아마도 수십 년째 지향하는 바가 아닌가 싶다. 자기 통제에서는 아직 강한 편이 못 된 것 같지만 상대적으로 나 자신에게 정직하겠다는 ’자기 정직‘에서는 좀 강한 편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도 사람들이 그 글을 읽고 내가 글에서처럼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싶어서, 그렇지 않다고 나에게 정직하고 싶어서 쓰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또 다른 이유는 글을 쓰면서 문득 그럼 나는 어떤 ’사람‘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는 의문이 생겨서다.




이제까지 살면서 들은 말들을 떠올려보면 ’강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좋은 사람‘이나 ’따듯한 사람‘은 종종 들은 바가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의 무리 속에 있으면 모든 사람을 챙겨야 하는 혹시 누가 소외되지 않을까 신경 쓰는 오지라퍼나 정의의 기사 같은 면모가 꽤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지금은 사람들의 무리에 가급적 끼지 않으려 하고 사람들에게 유익하지는 않더라도 해는 끼치지 않으려고 한다. 나의 가치관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미 여러 글에서 밝혔듯이, 나는 ’소박한, 최소한, 무해한‘ 삶을 지향하며 살아가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강한 사람‘을 지향하면서도, 그래도 ’좋은 사람‘, ’따듯한 사람‘의 면모를 어딘가 지니고 있으면서도 또 시간이 지나 언젠가 나를 돌아봤을 때 ’욕심이 없고 순박하다‘, ’연하고 밝다’와 같은 의미의 ‘담백淡白’한 사람으로 회상하게 되기를 바라본다.



2025.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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