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기다릴 것인가’라는 물음은 ‘만남, 헤어짐’과 이어진다.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고 만남이 있기에 헤어짐도 있는 것이고, 헤어짐이 있기에 만남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어지는 과정이 삶이기도 하다. ‘만남, 헤어짐’이라는 결과와 관계없이 기다리는 과정의 시간은 늘 흐르듯이 존재한다. 그러하기에 ‘어떻게 기다릴 것인가’라는 과정은 중요해진다. 과정이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만나야 하기에 기다림의 시간은 ‘나를 만나는 시간’이며, 그 시간이야말로 소중할 것이다. ‘나와 함께’ 다가올 만남을 준비하는 시간이 만남의 내용과 성격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그럴 것이다. 만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가, 준비가 없으면 만날 수 없다고 한다면 ‘만남’이 무엇이길래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준비 없는 만남은 만남이 아니란 말인가. ‘만남’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람이었어(노사연, <만남>)
준비되지 않은 우연한 만남도 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우연히 만난다. 우연한 만남의 이유와 의미는 무엇인가. 우연히 만났을 뿐이니 만남의 이유나 의미가 없어도, 우연히 헤어져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렇게 스쳐 지나간다. 우리 만남의 대부분은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유도 의미도 없이 우연히 스쳐 지나갈 뿐이라고 말이다. 우리의 삶을 찰나와 같은 시간을 머물다 지나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그러니 무엇에 그리 집착하냐고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 갈 것을 이라고 말이다.
노래처럼 우리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 ‘바람’이었다고, 더 나아가 운명적인 만남이었다고 말하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만남이 스쳐 지나가는 우연한 만남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이고, 우리의 만남에 이유와 의미를 부여하여 운명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긴 때문일 것이다.
준비된 만남도 있지만, 우연히 만나서 만남을 지속할 이유와 의미를 만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삶에서 우연한 만남이 더 흔할 수 있지만, 준비된 만남만큼 더 많은 만남의 이유와 의미를 가지게 될지, 준비된 만남만큼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연인아 연인아 이별은 끝나야 한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김원중, <직녀에게>)
견우가 직녀에게 ‘우리는 만나야 한다’고 소리 높여 노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옥황상제의 벌로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동과 서로 나뉘어 살던 견우와 직녀를 동네 주민들이 1년에 한 번은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주자하고, 까마귀와 까치가 다리를 놓아(오작교) 주면서까지 만나게 해 주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견우와 직녀가 흘린 눈물로 홍수가 나서 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많은 눈물을 흘릴 정도로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마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견우와 직녀는 왜 그렇게 애타게 그리워했던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이 견우가 ‘우리는 만나야 한다’고 노래하는 이유일 것이다.
견우와 직녀가 그토록 애타게 그리워하며 만나려는 ‘만남’의 이유는 ‘사랑’ 때문일 것이다.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일 것이다.
돈과 권력을 위해서도 우리는 만난다. 아니, 현대 사회의 대부분은 그 때문에 만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 만남은 만남을 수단으로 하는 것이지 그 ‘사람’을 ‘사랑’해서, 사랑하기 위해서 만나는 것은 아니다.
사랑 없는, 돈과 권력을 조건으로 하는 만남인 것이다.
그런 만남에 ‘사랑’이 있을 수 없고 ‘사랑’이 없다면 감히 만남이 아니라고 말하게 된다.
그럼에도 만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만나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헤어져야 한다.
그래서, 그래도 사랑으로 만나기 위해 ‘어떻게 만날 것인가’ 묻는 것이고,
그러하다면 만나야겠다면 ‘어떻게 기다릴 것인가’ 묻게 되는 것이다.
2023. 1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