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 <변증법 입문> 읽기
아도르노가 보기에는 비합리주의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측면이 있다. 인간이 합리적인 계몽 과정을 거치면서 몰아낸 비동일자,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거나 억압받는 요소들을 존중하려고 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아도르노는 이성을 굉장히 강조하는 인물인데 동시에 비동일자를 절대 버려서는 안 된다는 걸 끝까지 고수한다. 그것을 계몽의 자기 치유적 측면이라고 본다. 계몽이 끊임없이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모든 걸 재단하고 잘라내 가지고는 결국 자연을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지배하고 타자를 지배하는 오늘날의 형태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아도르노가 나누는 것이 도구적 이성과 객관적 이성이다. 객관적 이성이라는 것은 (비동일자와 같은) 그런 문제들까지 다 고려할 수 있는 이성이다. 계산만 하고 그다음에 합리적으로 모든 걸 정리해서 끼워 맞추고 하는 그런 것은 도구적 이성이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계몽이 도구적 이성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합리적인 외양을 취하면서 실은 비합리적인 상태로 머물고 있다. 그러니까 오히려 비합리라고 내몰린 것들까지도 존중하거나 받아들여서 사회적으로 전체적으로 같이 갈 수 있는 구조를 생각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양자를 적당히 합치거나 아니면 여기다 보호 구역을 만들겠다는 그런 의미는 아니다. 합리 자체에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끼어들어서 작동하는가를 봐야 한다는 논리다. 헤겔이 그런 걸 꽤 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헤겔은 합리주의자도 아니고 비합리주의자도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합리주의자다. 근데 그 합리의 의미가 비합리까지 다 내포하는 그런 의미다. 단순한 합리주의는 아니다. 도구적 이성은 결국 0, 1로 환원된다. 그렇게 해서 지배하기가 너무 편해졌다. 모든 걸 다 양화하고 계량화해서 되면 되고 안 되면 아니라고 하면서 잘라 버린다.
그럴 때 나타나는 현상이 ‘양질 전환’이 있다. 일정한 양의 화폐가 쌓여야만 그게 자본으로 전환된다. 화폐라는 본질이 변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특정한 조건이 있다. 화폐가 아무리 축적이 돼도 돈이 모여도 금고에 쌓아놓고 있으면 자본으로 전환 안 된다.
그러니까 자본으로 전환되기 위한 조건이 있는 것이다. 구체적 조건이 있고 그 속에서 ‘양질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양질 전환이라는 건 무슨 법칙에 따라서 그냥 저절로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그런 현실적 조건 속에서 일어나는데 분명히 그런 한계가 있다. 그런 한계에 도달하지 못하면 자본으로 전환을 못 한다.
변증법은 그 대립 구도들을 종합해서 각각의 요소들로부터 그게 어떻게 반대로 넘어갔는가를 보려고 하는 것, 그러니까 비합리가 어떻게 합리적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합리가 어떻게 비합리를 이렇게 포함할 수 있는가 이런 사고를 하는 것이다.
칸트주의 같으면 잘 안 할 것 같다. 다 칸을 친다. 이성은 이성, 오성은 오성, 감성은 감성, 영역별로 탁 나누는 사고방식을 강력하게 온 사방에다 적용한다. 그런 칸막이 치는 사고방식들이 사방에서 등장한다.
2023. 12. 24.
*위 글은 아도르노의 <변증법 입문> 번역자(홍승용)의 강의 노트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테오도어 W. 아도르노, <변증법 입문>, 홍승용 역, 세창출판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