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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Jan 02. 2024

안고 가는, 품고 사는

누군가는 자식을 누군가는 부모를 누군가는 형제를 

또 누군가는 배우자의 허물까지도 품고 산다

사랑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음을 알기에 가능한 일이다     


누구나 상처 하나쯤은 안고 살 듯이

누군가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 살아가겠지

사랑이다 결론은 늘 사랑이다.     


(채수아, ‘안고 가는 삶, 품고 사는 삶’ 중에서)           




‘안고 가는 삶, 품고 사는 삶’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추구해야 할,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날이 ‘흩어지고, 갈라지는’ 삶의 시대이고, 앞으로 점점 더 그 정도가 더할 것이기에 더욱 ‘안고 가는, 품고 사는’ 삶의 가치를 그리워하며 지켜내고 싶은 것일 테다.     


작가만 아니라 ‘어머니’나 ‘큰 누님’ 세대에게서 흔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삶이기도 하다.  

그러한 삶이 한 개인의 ‘희생’에 의해서 가능한 삶이지만, 그 희생이 헛되지 않을 만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의 삶이 중요해진 오늘날의 시대이기에 ‘개인’들은 ‘희생’을 바라지 않는다. 

나의 희생만 아니라 남의 희생도 불편한 것이다.

그리하여 희생하지 않으려는 시대가 된 것일 테다.


해서, 개인‘들’이 조금씩 양보함으로써, 혹은, ‘희생’을 나눔으로써 ‘한’ 개인이 ‘희생’을 떠안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합리적’이기 위해서도 ‘양보하고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안고 가는, 품고 사는’, ‘양보하고 나누려는’ 삶이 점점 더 그리워지는, 나아가 그러한 삶이야말로 인류의 파멸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가장 소중한 가치가 아닌가 생각되는 요즘이기도 하다.     


아직은 인류의 곳곳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안고 가는, 품고 사는’ ‘사랑’의 삶을 사는 이들은 아름다워 보인다. 결코, 쉽지 않은 가치의 삶을 살고 있기에 아름다워 보인다.     


‘사랑’의 이름으로, ‘양보와 나눔’의 이름으로 가능할 ‘안고 가는, 품고 사는’ 삶의 가치를 나 역시 지향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한 삶이 ‘나 다운 삶’, ‘더불어 살아가는 삶’, ‘슬기로운 주체로서의 삶’이라고도 여긴다. 


그와 같은 더불어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을 위해서라도, ‘소박한, 단단한, 즐거운’ 삶을 살 줄 아는 개인, ‘노동자국가’, ‘평화로운 과학기술’에 대한 지지와 실천, ‘자본주의 생산방식’과는 다른 생산방식에 대한 관심과 지향은 부단히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라고 여긴다.     



2024. 1. 2.



16화 안고 가는 삶, 품고 사는 삶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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