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존재 그 자체만으로
좋은 감응을 주는 사람이다.
존재 그 자체가 말 없는 선물이 되는 사람이다.
무외시無畏施란 존재 그 자체가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는 그런 보시다.
[이진경, 불교를 철학하다, 105]
15
향기로운 풀은 향기로워서 좋고,
지는 꽃은 지는 꽃이어서 좋다는 말이다.
고인 물은 고여 있어서,
흐르는 물은 흐르고 있어서 좋다고 함은
특정한 하나의 척도로 분별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갖는 미덕을 그 각자의 기준으로 ‘분별’하는 것이니,
이미 분별을 떠난 분별이다.
이렇게 분별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고 모든 것이 좋은 게 된다.
[이진경, 불교를 철학하다, 152]
16
안목 있는 사람, 지혜로운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때로는 겉으로 보이는 명백함 속에 가려진
안타까운 사정을 뚜렷하게 볼 줄 알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뚜렷한 것들이 섞여
새롭게 출현한 것의 특이성이나 매력을 명료하게
알아볼 것이다.
[이진경, 불교를 철학하다, 163]
17
중도란 진위와 선악 같은 양자의 ‘중간’에 서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떠나서 사태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길이다.
극단의 두 범주를 벗어나야만 보이는
사태의 미묘한 실상에 섬세하고 정확하게 다가가는 것이다.
[이진경, 불교를 철학하다, 164]
18
선악과 진위가 그렇듯 이항적인 대립개념 또한
호오의 선택을 포함한다.
하지만 중도中道는 호오의 선택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이항적으로 대립하는 두 범주에서
하나가 다른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보거나,
두 개의 범주로 귀속시킬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보는 것이다.
혹은 상반되는 두 범주가 중첩되는 사태에 대해
그 의미나 이유를 질문하는 것이다.
[이진경, 불교를 철학하다, 164]
19
어떤 규정성도 없음. 그것은 ‘공空’이다.
어떤 규정성이나 본성이 없기에 연기적緣起的 조건에 따라
그 조건이 규정하는 규정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기에 공은 단지 ‘없음’을 뜻하는 ‘무無’가 아니다.
그건 차라리 가능한 규정성들이 너무 많아서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다.
알도 될 수 있고, 식재료도 될 수 있고,
남을 괴롭힐 무언가가 될 수도 있고, 실험재료도 될 수 있고….
규정성은 없지만 수많은 규정 가능성을 갖는 상태가 바로 공이다.
[이진경, 불교를 철학하다, 178]
2024.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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