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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Aug 04. 2023

부끄러움을 느끼는 희망

최인석의 <약속의 숲>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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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하기를 망설이는 이유는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의무가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꼭 지킬 것처럼 약속한다. 약속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하는 서로의 일이기에 서로에 의지하여 지켜질 것을 믿으며 약속을 하는 것일 테다. 서로 믿고 의지하기에 약속에는 기대도 실망도 따르는 것일 테다.  

    

무언가를 약속함으로써 약속한 일을 지키려 함으로써 약속이 지켜질 가능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약속이 희망을 약속하기도 하는 것이다. 때론 희망 고문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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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석의 소설 <약속의 숲>은 약속이 실망을 넘어 환멸에 이르게 된 현실을 이야기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겠다는 운동가나 정치인의 사회적인 약속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담겨있다. 하여 실망도 하고 반복적이고 의도적으로 지켜지지 않는 약속 앞에서 환멸을 느끼는 것이다.     


소설 속 대영은 “사출 공장에서 태호와 더불어, 식기 공장과 형광등 공장에서는 혼자서 노동자들을 향하여 세상에 대해, 세상의 앞날에 대해 확신에 차서, 큰 소리로 외쳤던 그 모든 약속들”을 지키지 못하게 된 현실에 처해 있었다.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라는 현실 앞에서 더 이상 ‘평등한 세상’을 꿈꾸기를 멈춰버린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멈출 수는 있지만 약속을 포기하는 순간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약속을 포기한 듯 흩어져버린 대영들 속에서 대영은 멈춰 서 있었다.      


‘평등한 세상’이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약속을 지키려 했던 대영들은 무너져 내린 희망 앞에서 다른 길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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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수 없었던 그 모든 약속들을 등 뒤에 버려둔 채” 운동가가 아니라 정치인이 되는 것이 약속을 저버린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자리에서 ‘평등한 세상’의 약속을 이어가고 있는가가 중요할 것이다.      

주요 사안들이 벌어질 때마다 정치인들이 보여 온 실망스러운 모습들에 대한 대중들의 환멸과 혐오를 넘어 ‘평등한 세상’을 위해 약속한 것을 지키려 애쓰는 정치인이 되어가고 있는가라는 매 순간의 자각이야말로 약속에 대한 믿음을 지켜줄 것이다.     


운동 선배로부터 국회의원 제의를 받은 대영은 자신이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해 왔고, 또다시 그런 약속을 하고 있음을 자각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엇 때문인지. 무엇에 대해선지 알 수 없는 구역질이. 어쩌면 그 자신에 대해선 지도 모를 구역질이 목구멍 안에 가득 차올랐다.” 스스로의 행위에 구역질이 나는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능력자들에게서 아직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대한 희망을 볼 수 있다.     


미국에서 한국을 “거기”라고 칭하며 달러 세는 낙으로 산다는 태호에게서도 ‘평등한 세상’에 대한 희망은 엿볼 수 있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짚어내는 그의 ‘냉소’는 미국 혹은 자본주의에 대한 긍정이나 적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사람들은 아무쪼록 자신을 달러로 체험해야 해. 자신을 자신이 아니라 자신에 관한 헛된 환상으로 체험하고, 그 환상 속의 자신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이 아닌 그 환상을 좀 더 그럴듯하게 꾸미기 위해 그 환상에게 자꾸만 뭔가를 사줘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달러를 벌어야 해.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팔아야 하고, 자신을 잘 팔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좀 더 그럴듯한 환상을 꾸며줘야 하고… 이 세상 굴러가는 방식이 그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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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세상’은 멀리 있지 않다. 아니 멀리 있더라도 가는 길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자신의 문제와 관련한 것에서조차 평등하지 않다면 그들이 평등한 세상에 대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기는 어렵다. 백인들의 인종주의를 비판하는 대영이 딸이 낳은 흑인 손자를 국회의원 선거에 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심정적으로 아예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태호의 자본주의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대영의 ‘평등한 세상’을 향한 여정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는 미지수다. 그런데, 딸 윤경의 편지에 대영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윤경은 편지에서 자신이 아버지의 귀중품일 수 없으며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 갈 수 있는 자율적 주체라고 말한다. 대영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손자를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했음을 의식하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부끄러움을 통해 대영은 ‘평등한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평등한 세상’은 내일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지만 옆에 있어 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옆에 있어 주는 것이다. ‘평등한 세상’은 그렇게 운동가든 정치인이든 또 누구든 각자의 옆을 지켜주며 서로의 약속을 지켜가는 것일 테다.


2022. 0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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