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고헤이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읽기
그렇다면 애초에 ‘부’란 무엇이까요? ‘부’를 나타내는 영어는
일반적으로 웰스(wealth)입니다. 이것은 화폐나 유가증권,
부동산 등 화폐로 측정할 수 있는 재물, 금액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재물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부와 상품의
구분이 모호해집니다. 사실 부는 바로 상품이라는 고정관념이
우리에게는 이미 몸에 배어있습니다.
이를 풀어내어 사고의 폭과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히려는 것이
『자본론』의 부제이기도 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프로젝트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부’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보겠습니다. 독일어로 ‘부’는
‘라이히툼(Reichtum)’이라고 합니다. 형용사 라이히(reich)는
영어로 리치(rich), 일본에서도 가타카나로 ‘릿치(リッチ)’
등으로 사용하죠. 이 말에는 좁은 의미로는 ‘부유한 사람’처럼
부자의 이미지가 있지만, 맛이나 향이 ‘리치’하다고 하듯이
무언가 ‘풍요롭다, 윤택하다(abundant)’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는 돈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용법에 따르면, 예를 들어 깨끗한 공기나 윤택한 물,
즉 자연의 풍요도 사회의 ‘부’라는 뜻이 됩니다. 푸른 숲,
누구나 맘껏 쉴 수 있는 공원, 지역 도서관이나 공민관(公民館)
등이 많이 있는 것도 사회에 중요한 ‘부’ ‘재산’일 테지요.
지식이나 문화·예술도 그렇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나 장인의
기능도 그렇습니다. 화폐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풍요롭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풍부한 상태,
그것이 바로 사회의 ‘부’입니다.
[출처]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사이토 고헤이 지음, 정성진 옮김, arte 2024, 27~28.
2024. 4. 29.
『자본론』은 ‘부’에서 시작된다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