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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

by 영진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오늘 그레이스 블레이클리는 「새로운 제국주의」라는 글에서 레닌이 분석한 제국주의 과정과 오늘날 우리가 ‘지구화’라고 부르는 바는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블레이클리들에 따라 ‘제국주의’와 ‘지구화’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를 염두에 두면서 오늘날의 ‘새로운 제국주의’의 양상들을 통해 ‘새로운 제국주의 시대’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블레이클리에 따르면 “금융가들은 국내에 투자하기보다는 독점기업들이 축적한 자본을 아직 자본주의가 완전

히 정착하지 않은 지구 경제 주변부로 유출하는 데 일조하려 한다. 국가독점자본주의하에서 경쟁은 사라지지 않고 초거대기업들은 결코 하나로 완전히 통합하지는 않는다. 대신 이들은 단순히 국내 수준이 아니라 지구 수준에서 다른 초거대기업들과 제한된 형태의 경쟁을 계속 벌이며, 국내 자본이 확장해나갈 새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 간 경쟁을 벌이는 각국 정부가 이들을 지원한다. 레닌은 이것이 제국주의, 즉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의 토대라고 역설했다.”(코크75)


블레이클리는 레닌의 제국주의에 대해 이해하면서 제국주의의 ‘순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오늘날의 전 지구적 독점기업들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반反경쟁 관행으로 창출한 산더미 같은 현금 방석에 앉아 있다. 그리고 나서 이들은 거액의 자금을 부유한 주주들에게 배당하고 남은 일부를 생산 투자에 사용하며, 나머지는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다른 대기업을 인수 혹은 합병하는 데 쓴다. (…) 북반구로부터 남반구로의 자본 이동 덕분에 부유한 투자자들은 주변부의 자산을 사들일 수 있으며 주변부 국가들의 성장에서 이윤을 뽑아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창출된 이윤이 북반구 금융기관으로 돌아오면 제국주의의 순환이 완결된다. 예를 들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매년 ‘개발’ 원조로 얻는 이익의 3배를 자본 유출로 잃는다.”(코크76)


블레이클리는 현대 제국주의를 ‘새로운 제국주의’라고 부르고, 콰메 은크루마는 ‘신 식민주의’라고 부른다. 무엇이 새로운 것일까.


블레이클리는 “현대 제국주의가 항상 폭력을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코크77)라고 주장한다. 또한, 블레이클리에 따르면 1965년 가나의 독립을 이끈 지도자 콰메 은크루마는 “오늘날의 신 식민주의는 제국주의의 최종 단계이자 어쩌면 가장 위험한 단계를 보여 준다”고 하면서, “신식민주의의 본질은 아예 종속된 국가가 이론상으로는 독립국이지만 실제로는 국제적 통치권international sovereignty의 지속적인 덫에 발목이 완전히 잡혀 있다는 데 있다. 현실에서 신 식민주의에 종속된 국가의 경제 시스템과 이에 따른 정치적 정책의 방향은 국외에서 결정 된다”고 주장한다.(코크77)


또한, “신식민주의 권력은 서로 연결된 두 과정을 통해 행사된다. 첫 번째 과정은 서구 독점기업들이 남반구 시장을 지배하는 것이고, 두 번째 과정은 남반구 국가의 국내 자본이 창출한 이윤이 런던의 시티 같은 주요 금융 센터들과 연결된 추출 네트워크를 통해 북반구로 이전되는 것이다. 브레턴우즈 시기에는 첫 번째 과정이 지배적이었지만, 금융 지구화 시기에는 두 번째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해진다”고 주장한다.(코크77-78)


‘독점기업과 제국주의 국가들의 금융 네트워크’에 의해 ‘폭력을 우선하지 않지만 가장 위험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현대 제국주의의 순환 과정에서 발생한 신식민주의의 양상은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이자 결과로서의 과정으로서 “1970년대와 1980년대 오일쇼크와 서구의 이자율 인상의 결과로 닥친 제3세계 외채 위기를 낳았다”고 블레이클리는 덧붙인다.(코크78)


“장기적으로 외채 위기와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남반구의 자본을 유출시키면서 소득과 경제 성장을 위축시켰다. 그 결과 이들 국가의 외채는 GDP에 대비해 오히려 늘기만 했다”는 것이다.(코크79)


또한, “구조조정을 통해 강요된 자본계정 자유화capital account liberalisation는 (…) 이 조치들 덕분에 다국적기업들이 보다 쉽게 남반구 경제에 진입해 국내 자본가들을 대체했고 그 이윤은 북반구로 재 흡수됐다. 또한 엘리트들이 현금을 국외로 빼돌려 해외(대부분 조세 회피처)에 쌓아놓기도 더욱 쉬워졌다. 한편 국내 생산자들은 중심부 국가들 쪽으로 기울어진 지구 시장에 재화를 수출하지 못하게 막는 거대한 장벽에 부딪혔으니, 중심부 국가들은 엄청난 재원을 투입해 자국의 국내생산자들을 보호했던 것이다. 그러나 금융 지구화로 상처를 입은 것은 남반구만이 아니다. 자본이 주변부로부터 중심부 제국으로 유출됨으로써 중심부 국가들의 경제 또한 왜곡됐으며, 금융 위기 리스크가 커졌다”(코크79~80)는 것이다.


지구 제국주의 시대의 ‘자본주의’가 낳은 ‘자본주의’의 ‘위기’라는 ‘공통점’이자 ‘새로움’을 마주하면서 100여 년 전부터 현재까지 진행되어온 제국주의의 역사를 돌아보면 ‘자본주의 발전의 최고 단계’의 ‘국가독점 자본주의’, ‘자본독재’를 더욱 실감하게 된다. 현대 자본주의의 위기는 ‘수탈과 독점’이라는 제국주의의 순환 과정을 통해 부단히 ‘위기’를 ‘새롭게’ 축적해온 자본주의 운동의 역사적인 산물인 셈이다.



2023. 2. 10.



G. 블레이클리:『코로나 크래시』, 장석준 옮김, 책세상 2020, 75쪽 참고. 아래에서 이 책에 대한 인용은 (코크쪽수)로 표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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